한국일보

스님 생활

2020-10-26 (월)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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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생활은 자유롭고 어찌 보면 아무 걱정 없이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대중 속에 일어나는 온갖 걱정을 할 때도 있고, 자유롭지 못하며 철저한 시간과 고독하고 처절한 외로움 또한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지금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그러하듯 하다.

스님생활을 하며 그동안 수많은 이들의 생로병사를 보게 된다. 가족들 요청에 여러 병원 신생아실, 입원실, 영안실 그리고 장례식장, 화장터를 가고 기도를 하게 된다. 가는 곳 마다 다양한 인연과 사연을 듣게 되고 세상의 인연을 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가족도 없이 노숙자로 쓸쓸히 돌아간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린아이, 청소년, 사고, 자살, 병을 앓다가 또는 갑자기 회사에서 죽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장례비가 없어 겨우 조립식 장례식장을 빌려 조화 하나 없이 장례식을 하는가 하면, 모 대기업 가족의 상을 치룰 땐 좋은 병원의 장례식장 한 층을 다 빌려 그 시절 유명한 이들이 다녀가는 집안도 있다. 그중 어느 유명한 연예인의 유언이 생각난다. ‘스님, 하루만 더 살고 싶어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의미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날도 많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 하루가 정말로 간절하고 소중하다.

대부분 불교신자 망자 가족이 화장을 원해 화장장에도 함께 가게 된다. 수 시간이 지난 후 한줌의 재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산다는 것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고, 해당되지 않을 것 같지만, 당장 그 시간이 내게 온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받아들까? 왜 이렇게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삼국유사(三國遺事) 원효스님 이야기 중 사복불언(蛇福不言, 사복이라는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이란 내용이 있다. 사복 어머니의 장례식에 원효스님이 명복을 빌며 축원 하는 내용이 나온다.

“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苦)다. 죽지 말라. 나는 것이 고(苦)다.”(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이에 사복이 말이 너무 길다 하니 원효스님이“죽음도 삶도 괴롭다.”(死生苦兮)라고 한다.


다시 스님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합격했다고, 취직했다고, 약혼한다고, 결혼한다고, 이혼한다고 연락이 온다. 어느 날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이를 만나고, 어느 날은 임종을 보기도 하며, 또 어떤 날은 한 병원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웃으며 축하해 주고 병원 지하에 위치한 영안실에 가서 아미타불 염불을 해주는 날도 있다.

올해 2020년 정말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다음 생엔 또 다시 고(苦)를 받지 않기를. 삶이 고(苦)라면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옛 스님이 말하기를 ‘많이 알고, 재주가 많아져 세상에 이름이 나면 갈수록 더 바빠지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진다.’는 것이 있다. 성공했다. 잘 산다. 돌이켜 보면 한순간. 한 찰나 동안의 모습들이다. 혼란하고 어려운 시절일수록 앞만 보고 가지 말고, 내 주변도 두로 살피며, 비록 줄 것이 많이 없어도, 밥은 천천히 함께 먹고 나눠주고 배려하며, 서로 외롭지 않게 더불어 살아가는 훈훈하고 정다움이 많아지길 두 손 모아 빈다. 이제 낙엽도 많이 떨어졌다.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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