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 100개 중 커터+체인지업 조합 60개…세 번 당한 양키스에 화끈하게 설욕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찰리 몬토요 감독은 에이스 류현진(33)을 내세운 경기를 하루 앞두고 "편안한 밤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선발 투수 류현진의 농익은 완급 조절을 감상하며 4년 만의 포스트시즌 복귀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토론토 구단 구성원 사이에서 "우리의 에이스"로 불리는 류현진은 몬토요 감독을 비롯한 구단 식구들의 믿음에 200% 이상 부응했다.
토론토 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 닫힌 바람에 올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 빛난 류현진의 현란한 투구를 홈구장 로저스 센터에서 직접 보지 못하고 TV로 봐야 해 아쉬울 법도 했다.
류현진은 24일 뉴욕주 버펄로의 세일런 필드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한 정규리그 마지막 등판에서 7이닝 무실점의 눈부신 역투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뜻깊은 여러 일을 해낸 날이었다.
토론토는 이날 승리로 매직넘버 1을 지우고 2016년 이래 4년 만에 가을 잔치 출전을 확정했다.
4년간 8천만달러를 받고 토론토로 이적한 첫해 정규리그 마지막 등판에서 류현진은 올해 최고의 역투를 뽐냈다.
지난 8일 5이닝 3피홈런 5실점을 포함해 전날까지 양키스와의 세 번의 대결에서 홈런 7방을 허용하며 2패, 평균자책점 8.80으로 철저히 밀렸다가 이날 한 번에 빚을 갚았다.
류현진은 또 토론토 선발 투수로는 올 시즌 처음으로 7이닝을 던졌다. 에이스, 1선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7이닝을 채우고 가을 야구 워밍업도 마쳤다.
가장 타선이 활발하게 터진다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알동부')에 데뷔해 평균자책점 2.69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정규리그를 마친 것도 수확물이다.
포수 대니 잰슨과 양키스 타자들의 의중을 역으로 이용하는 영리한 볼 배합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세일런 필드 외야에 강하게 부는 바람을 고려하면 류현진은 빠른 볼, 체인지업만으로는 양키스 핵타선을 잠재울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공이 컷 패스트볼(커터)이었다. MLB닷컴이 운영하는 게임 데이는 커터를 슬라이더로 분류했다.
야구 통계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류현진은 100개의 공 중 커터(31개)와 전가의 보도 체인지업(29개) 두 구종으로만 60개를 채웠다.
포심 패스트볼(18개), 싱커성 투심 패스트볼(10개), 커브(12개)는 양념이었다.
팔색조는 구속과 제구가 뒷받침될 때에야 화려함이 빛난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더욱더 낮게 던진 류현진의 팔색조는 그래서 아주 위력적이었다.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예리하게 휘어져 들어가는 커터와 바깥쪽에 쑥 꺼지듯 가라앉는 체인지업의 앙상블은 눈부실 정도였다.
류현진은 삼진 4개를 제외한 아웃카운트 17개 중 7개를 땅볼로 채웠다. 뜬공은 9개, 직선타가 1개였다.
체인지업을 알고도 속을 만큼 양키스 타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2-0으로 앞선 6회초는 이날의 백미였다.
류현진과 무사 1, 2루에서 등장한 4번 타자 장칼로 스탠턴의 대결은 이날 승패를 압축한 장면이다.
류현진과 잰슨 배터리는 변화구가 아닌 속구로 스탠턴의 의표를 찔렀다. 시속 141㎞짜리 빅리그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속구였지만, 정확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두 번째 공도 마찬가지였다. 체인지업도, 커터도 아닌 시속 146㎞짜리 속구가 다시 스트라이크 존을 관통하자 스탠턴이 쫓겼다.
유리한 고지에서 류현진은 곧바로 결정구를 던졌다. 몸쪽으로 면도날처럼 꺾이는 커터였다.
스탠턴의 방망이는 자연스럽게 헛바람을 갈랐고, 그걸로 이날 승패는 사실상 결정 났다.
MLB 게임 데이는 속구로 분류했지만, 휘어져 도망가는 궤적상 속구보다는 커터에 가까웠다.
류현진은 여느 MLB 투수처럼 그날의 게임 플랜을 세우고 등판하며 경기 중 안 풀릴 때엔 경기 운영 계획을 능숙 능란하게 바꿔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아무리 류현진을 세 번 연속 두들긴 양키스 타선이라도 설욕을 작정하고 나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을 이번에는 꺾을 수 없었다.
변함없는 팀의 신뢰에 책임감에서 나온 무결점 완벽투로 화답한 류현진은 30일 성장하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가을 야구의 위대한 첫발을 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