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떻게 길들여 졌는가

2020-09-21 (월)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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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꽂은 지 35년 넘어갑니다. 늘 화려한 화훼만 만지다 보니. 들꽃이나 야생화엔 관심이 없었지요. 요즘엔 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하니 제가 철이 난건가요? 죄송한데 순수한 이 꽃들을 보면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닮았습니다. 고요하고 조용한 분을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화려함과 물질의 풍요가 일상이던 전문패션 현장에서 가치를 드러내던 그녀. 적극성과 세심함이 어디에도 조화롭게 펼쳐 주위가 밝았던 그녀가 도시를 떠나 숲속으로 갔다. 풀꽃 사진 골고루 찍어 보내며 적어온 글이다. 누군가 삶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에 스민다.

계획했던 일들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은채 지나니 제한된 시간을 지낸다는 것 실감한다. 팬데믹 상황에 집안청소 했다는 얘기 제법 듣는다. 아예 가구 배치까지 다르게 하고 나니 새집에 이사온 것 같다는 이도 있다.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정체한 시간을 그렇게 쓰므로 새로움을 맞는가보다.


청소 때마다 이리저리 옮기며 간직했던 것. 언젠가 정리해보려 했지만 못한 것. 그것이 눈에 거슬렸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혼잣말. 몇 번 되뇌이다가 다 버리기로 결심했다. 재활용 품목인가 확인전화하니 일반쓰레기라 한다. 2개의 쓰레기봉지에 가득 채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꺼번에 다 버리기에는 양이 많아 몇 박스는 일단 리빙룸에 내놨다. 집에 온 막내가 묻는다.

“ 버릴려고? ”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 왜?”, “그냥 시간도 없고 누가 이런 것 듣겠니? ‘”“엄마 이거 오리지날이잖아. 엄마 잠시 더 생각해보자.”
컴퓨터에 입력 안된 것이니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막내 얘기다. “ 반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 했다. 빠른 몸놀림으로 쓰레기통에서 25년 전 방송 테이프 봉지를 들고 온 아들. 왠지 대접 받은 느낌이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 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막내. 나보다 낫다.

새로운 것, 빠른 것에 익숙하고 이기적 사고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급함이 젊은이들의 의식구조다. 그렇게 길들여졌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다른 점도 있음을 알았다.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살면서 부딪치는 장애물. 이번만 지나면 좋을 것이라는 되풀이. 여러 모습과 다른 종류로 모든 이들이 다 겪는 것. 인생에서 장애물은 자신의 정신을 단련시키는 스승이니 반가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은 닥치기 전까진 이론이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이론이 체험으로 바뀌어 내 것이 된다. 그 사이를 힘겹게 헤쳐 나오기까지의 고뇌는 어둡다. 판단도 흐리게 한다. 어려운 사건들은 겹쳐서 온다는 얘기가 있다. 그 세월 길들이는 것 연륜이다.

연륜은 인연의 소중함을 안다. 그것은 많은 것을 얻게 한다. 용서와 배려 관심 감싸줌 사랑 자비 등 여러 단어로 나뉘어 쓰이지만 결국 인연으로 귀결된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지낸다면 얻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이념과 사상일 수도, 믿음이라는 종교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러니 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자유마저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 염원한다. 그리 길들여지기를 한없는 생각의 나래를 편다. 문득 그녀를 생각한다. 들꽃보고 나를 닮았다 생각하는 가슴이 따뜻한 이에게 답을 써야겠다.

“빠져나갈 틈을 줘야죠. 최고의 칭찬을 고단수로 하시니. 그대 눈높이에 가까이 가도록 할게요. 속깊은 그대 마음의 여유와 풍요. 눈길마저 깊어가네요. 햇살과 미풍 그리고 푸른하늘 아래 당신의 별이 지천을 수놓은 곳. 지닐 수 있는 모든 감성 쏟아 스스로 꼭 안아주어요. 사랑은 그렇게 우주에 스며 모든 생명체 살 맛 나게 하리니!” 화사한 웃음 번지는 마음으로 적어 보냈다.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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