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시대… 일과 삶, 슬기로운 동거생활

2020-04-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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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에 ‘업무 군살’ 쏙~

출퇴근·보고 비효율 거품 없애
‘딴짓’오해받을라 알아서 척척
업무 행간 파악 고충은 한계로

“출퇴근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만 해도 업무 능률에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얼굴 보면서 일할 때 의사결정이 더 빠른 것 같았지만 재택근무 소통 원칙을 세우고 문화가 정착되니 속도가 붙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약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인 국내 철강 업체 김모(41) 차장이 전한 소감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꾸준히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다 보니 업무에서는 큰 공백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직장인들은 대체로 새로운 업무 형태에 만족하고 있다. 돌발 악재가 부른 고육지책이지만 오히려 비효율 거품을 걷어내는 기회가 됐다는 시각도 많다. SK텔레콤이 재택근무 한 달을 맞아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평소와 유사하거나 더 효율적’이라는 답변이 63.7%에 달했고 ‘다소 불편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응답도 34.0%를 차지해 무려 97%가량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직장인들이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것은 출퇴근 시간이 줄고 직원들 간 잡담도 줄어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줄었다는 점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판교까지 출퇴근에 왕복 5시간을 소비하던 이모 부장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업무에 곧장 임할 수 있어 집중력이 향상됐다”고 했다.

집에서 일하면 느슨해지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고정관념도 꺾였다. ‘딴짓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오히려 ‘알아서’ 열심히 일하고, 온라인을 통해 결재자와 직접 소통하다 보니 오히려 일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것이다. 외국계 화학 회사에 근무하는 방모씨는 “상사에게 하루 근무계획을 미리 보고하고 정기적으로 체크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성과에 대한 책임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신모(34)씨의 경우 재택근무가 보고체계의 ‘교통체증’을 뚫는 계기가 됐다. 신씨는 “이전에는 보고서 하나를 올리기 위해 사수→팀장→임원 등의 사다리를 여러 번 오르내렸다”면서 “하지만 재택근무 후에는 팀장이 직접 수정을 하고 담당 임원도 지시사항을 한 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메신저로 보내와 효율성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성공적인 재택근무를 위한 방법들도 진화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메신저를 끊어 보내지 말고 전체를 한 번에 기록할 것 △같은 주제로 세 번 이상 메신저 대화가 오가면 전화통화할 것 등 구체적인 방법 열 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업무의 ‘행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지시의 민감도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또 구성원 간 아이디어 공유가 필수적인 일부 업종에서는 재택근무 방식이 더 답답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한 데 따른 고충도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은 “거래처와 통화 중인데 아이가 계속 울어 너무 민망했다”며 “재택근무 환경이 사무실보다 못한 경우에는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도입 못해? 해보니까 잘 되네!

개인정보·즉시응대 필요한 콜센터
단순상담으로 ‘업무상 불가’ 편견 깨
원격접속 등 IT자원도 확산 큰도움

콜센터는 고객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고 즉각적인 지시를 통한 고객 응대가 필요해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대표적인 업종이다. 하지만 서울 구로 콜센터에서 수도권 최대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홈쇼핑·통신은 물론 금융까지 콜센터를 운영하는 업계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실제 CJ오쇼핑(035760)은 지난 2018년 기준 약 500명의 콜센터 근무자들 중 절반 이상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비슷한 규모의 현대홈쇼핑(057050)은 약 20%, GS홈쇼핑(028150)은 15%가량을 재택근무로 돌렸다. 롯데홈쇼핑은 5%가량이 재택근무에 들어간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업종이나 업무들에 재택근무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도전’에 인간이 ‘응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집단감염의 우려 속에서도 재택근무를 도입하지 못한 업종·업무의 주된 이유는 업무의 특성에 따른 것이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코로나19 재택근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미실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응답은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하다(29.9%)’가 가장 많았다. ‘회사가 아예 재택근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19.3%)’ ‘확진자가 나와야 할 계획(15.5%)’ ‘재택근무 환경이 구축돼 있지 않다(14.7%)’ 순이었다. 기존 사고방식에 따라 재택근무가 어렵다는 인식과 재택근무 시스템의 부재가 재택근무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콜센터 사례에서 보듯 해당 업종과 업무는 재택근무가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면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실제 신한은행은 전체 상담사 900명 중 150명을 재택근무로 돌려 금융 업계에서 콜센터 재택근무를 선도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핵심은 ‘단순 문의’와 ‘개인정보가 필요한 상담’을 나누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열람해야 하는 업무는 사무실에서 응대하고 단순 문의는 재택근무 상담사가 맡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재택근무 도입 의지를 갖고 방법을 찾아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도입할 수 있었다”며 “업무용 노트북과 인터넷 전화 등 하드웨어를 상담사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그리 큰 투자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 재택근무를 선제적으로 실시한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스스로 한 달 넘게 재택근무를 한 뒤 많은 점을 느끼고 있다”며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데이터 축적 등을 통해 (재택근무를) 체계적인 워크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일등공신은 정보기술(IT) 활용이다. 언제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격접속 플랫폼과 정보 보호를 위한 보안 플랫폼, 근태관리 시스템, 업무공유 시스템 등이 재택근무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효성그룹의 IT 계열사인 효성ITX는 네이버클라우드플랫폼(NCP), 삼성전자, LG유플러스 등과 함께 재택근무가 가능한 컨택센터(콜센터) 솔루션을 코로나19 관련 대국민상담을 맡고 있는 질병관리본부 ‘1339 콜센터’에 우선 적용하기도 했다.

<박효정·이수민 기자>

남편-아이 거리 가까워졌지만…
매 끼니 차리다가 울컥하기도


주부들이 말하는 재택근무 장단점
가족 감염 위험 줄어 마음 놓여
집안일·자녀교육 등 잦은 충돌도

“남편 재택근무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경기도 일산에 사는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인 A(42)씨가 한 달 동안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을 ‘수발’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정보기술(IT) 관련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이달 초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남편이 집에서 일한다고 하자 우선 감염 위험이 적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또 틈틈이 집안일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도 은근히 가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은 좀처럼 그 앞을 벗어나지 않았다. A씨는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할 때는 정말 ‘주부 사표’를 쓰고 싶었다”며 “잠시 집 앞 마트를 가면서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탁하자 정색을 하며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라고 말할 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집에서 일하면서 집안일에는 너무 무심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러운 남편의 재택근무를 함께 경험한 주부들은 장단점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장점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 출퇴근 시간이 아예 없어졌고 회식이나 비즈니스 저녁 모임 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학이 연기돼 자녀들도 집에 있는 덕분에 온 가족이 함께 한적한 공원을 찾아 산책하거나 보드게임 등을 함께 즐기는 시간이 늘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B(40)씨는 “남편이 1시간20분가량 걸리던 출퇴근 시간을 고스란히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다”며 “재택근무를 할 때는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준비를 도맡아 했다”고 전했다. 영업직에 근무하는 남편을 둔 서울 은평구에 사는 C씨는 “오후6시면 자체 퇴근해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단점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남편의 눈치와 자신만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다. 주부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식사준비. 매일 장을 보고 김치찌개라도 끓여야 하는 수고는 온전히 주부의 몫이다. 코로나19로 밖으로 나가는 게 꺼려져 평소보다 많이 주문하는 택배도 남편 눈치가 보인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주부 D씨는 “남편이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 택배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며 “택배 온 물건이 뭐냐고 묻는 남편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가 싸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전적으로 주부들의 몫이던 자녀교육도 ‘집에서 일하는 남편’과 자주 부딪히는 주제다. 앞뒤 상황도 모르면서 자녀교육에 ‘훈수’를 두는 경우가 잦기 때문. D씨는 “남편이 갑자기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겠다며 아이들 책상 옆에 앉았다가 결국 큰소리만 났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이들도 아빠가 공부를 봐주겠다고 하면 줄행랑을 친다”고 웃어 보였다.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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