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시의 비창

2020-04-08 (수) 박사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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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가슴이 찢어지는 사연과 이별이 쌓이는 도심의 하층민들
극과 극의 틈새에 끼어 끊임없이 시달리는 생은 슬픔에 잠기고
계급과 제도에 억압되는 고통의 삶 죽지 못해 사는 목숨들
얼마를 더 처절히 밟히고 뭉개져야 들녘의 꽃을 피워
당신의 품안에 안겨 에덴의 고향 동산으로 돌아갈 수 있으랴
오 창조주여 땅을 일굴 사람 필요하여 당신 위해
흙의 먼지로 만들어진 이 사람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선악의 눈을 가졌다는 아내와의 쌍벌죄 이제 가없이 보아주소서
한 번 용서의 기회와 생사의 선택도 없는 멍에를 씌워
저주받은 땅으로 매몰차게 내친 무정한 벽이여
죽는 날까지 이 가혹한 형벌이 진정 당신의 마음이었나요
울부짖는 당신의 사람 몸과 마음 너그러이 받아주소서
해거름 짙게 깔리는 도심의 길 위에서 나는
귀향하는 아이네이스의 시련과 고난이 교차하는
신들의 무서운 유희에 디오의 사랑과 죽음을 생각한다
화사한 계절 미풍이 가슴을 적셔주는 날
붐비는 지하철 1층 통로 광장에 가보면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오르페우스의 영혼을 가진 거리의 악사는 오늘 한 끼의 빵을 위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바이올린 연주를 타고 있으리
불평등한 도시의 하층민들이 빼앗기는 삶의 애환 속에
구겨진 몇 장의 지폐와 은빛 동전 몇 잎이 호리병모양
열린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널부러져 있는 연민이여
탄식하노라 비소(非笑)를 날리는 도시인의 마성이여
지그시 눈을 감고 꿈꾸듯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타는
활은 신의 손이요 지피는 얼굴의 미소는 영혼의 기쁨이로다
아아 나는 그대에게 비루한 인생이 덧없이 부끄럽구나
하루 삼세끼 일당 벌이도 아니 되는 최저 임금이하
열악한 노동은 4인 가족의 초라한 세끼 밥값이 부족한 돈을
손에 움켜쥔 채 지하철 입구로 향하는 고단한 퇴근길
눈물의 빵을 눈물로 비창을 읊으랴 오, 당신이여 멈추소서
괴벨스의 이상과 멋진 환상의 쾌락과 투퀴디데스의
덫에 갇힌 타락의 맛에 취한 이 상실 시대
허구와 위선과 환유가 범람하는 세상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이 세상 바다, 사해(死海) 속에
떴다 사라져가는 슬픈 군상(群像)들
야밤을 뒤로 하는 발길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그대들이여 프라비다, 행복한 인생을 사시게

<박사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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