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페이스 타임아, 고맙다

2020-04-01 (수) 노려/ 수필가
크게 작게

▶ 독자·문예

아가가 페이스 타임 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가야, 아이구 우리 이쁜 아가야~ 까꿍.” 셀폰 화면에 대고 까꿍까꿍한다.

아가는 두 팔 두 다리 막 흔들어 대고, 손가락을 빨고, 칭얼거린다. “ 배고픈가? 쉬 했나? 기저귀 갈아줘라.”? 하루는 아가가 얼굴 알아보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더니, 그 다음 날은 뭐라고 말을 하는 듯이 옹알거린다. “으응~ 뭐라구? 얘가 말을 하네. ” 셀폰을 들고 호들갑이다.
맨하탄 회사들 재택근무 실시하라는 주지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브루클린 사는 딸과 맨하탄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아들을 걱정했다.

애들이 수퍼마켓에 가는 횟수라도 줄여 주려고, 동네 농장 마켓이나 H 마트 같은 곳에서 식품을 사다가 전해 준다니까 오지 말라고 하더니, 꼭 오겠으면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물건을 내려 놓고 마치 스파이 영화처럼 멀리 서있던 자기들이 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우리는 애정 영화의 주인공처럼 차 창으로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손으로 뽀뽀를 보내고.
그것도 며칠, 이제는 아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기 쉬운 늙은 부모를 걱정해서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딸은 절대로 꼼짝을 말라고 협박을 한다. 아들은 2달 반이 넘은 아가를 페이스 타임으로 매일 보여준다.


태어나서부터 한 주일에 두,세번 산후 관리를 해주러 아들 집에 가서, 아가가 자는 동안엔 둘이서 나가 점심을 먹던지, 며느리가 잠시나마 혼자 밖에 다녀오도록 해줬었다.
마치 바쁘게 출근이나 하듯이 이것저것 싸 들고 아침에 기차 시간 맞추어 부랴부랴 나와 메트로 노스를 타고 그랜드 센트럴에 내려서 또 지하철을 갈아 타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른하던 노후에 활력을 줘서 좋았고 며칠 마다 달라지는 신생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아가한테 스크린 타임을 1분 이상 안 보여 준다고 처음엔 잠깐씩만 보여주더니, 이젠 몇 분 씩 아가랑 얼굴을 맞댈 수 있게 해주는 아들 내외가 고맙다. 한번은 침대에 엎어 놓은 아가가 건들건들 고 개를 든다. “어머머머, 세상에… 다 컸네. “

아가가 매일매일 페이스 타임 속에서 크고 있는 것이다. 가서 볼을 만져주고 꼭 안아주고 싶은데…

사실 내 부모는 이것도 못했다. 페이스 타임이 없던 시절, 갑자기 내가 얼마나 불효자식인가를 깨닫는다. 미국에 간 노처녀 맏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데, 한참 지나서야 첫 손녀딸 사진 몇 장이 도착했을 테고, 또 한참 있다가 사진 몇 장을 더 받아 봤을 테니 말이다. 사진이라도 빨리 빨리 많이 보내드렸어야 하는데,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을까.

평소에 내가 전화를 해도 잘 안 받고, 전화가 통해도 짧게 말을 하던 눈코 뜰새없이 바쁜 딸도, 집에서 일을 하다가 가끔씩 뜨르르 뜨르르…페이스 타임으로 자기 얼굴을 보여준다. “아이구 까꿍. 우리 딸, 이쁜 딸!” 설흔 넘은 딸이 귀엽기만 하다. 고맙다 페이스타임아.

아가를 만날 수 있을 때 아가가 얼마나 커 있을지…
암만 페이스 타임이 고맙긴 해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끝나기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노려/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