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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렵다고 다 같은 질염 아냐…정확한 진단 중요

2020-02-25 (화)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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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감기’ 질염 연 124만명 고통, 초기 발견 땐 1~2주면 완치 가능…곰팡이·세균 때문이면 항진균제 치료

▶ 기생충 원인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남→녀 전파 흔해 함께 항생제 복용

가렵다고 다 같은 질염 아냐…정확한 진단 중요
지난해 124만명의 여성이 급성·만성 질염으로 진료를 받았다.
흔한 질환이다 보니 ‘여성의 감기’로 불릴 정도다.
건강한 질은 미생물의 90~95% 이상을 유익균인 락토바실러스균이 차지한다.
이 균은 산을 분비해 질을 세균 등의 감염에서 보호할 수 있는 약산성(pH 3.8~4.5)으로 유지해준다.

질 분비물에서 약간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나는 것도 이 균 때문이다.
하지만 질염은 물론 감기 등 다른 질환 치료 과정에서의 항생제 오남용, 잦은 질 세정과 좌욕 등으로 락토바실러균이 크게 줄면 질의 수소이온농도(pH)가 중성으로 바뀌어 감염에 취약해진다. 이 유익균은 한 번 감소하면 원상복구가 어려워 항생제 치료로 침입한 세균을 박멸해도 ‘재감염→질염 재발’로 이어지기 쉽다.

문종수 강동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질염 증상이 있는데도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않고 여성청결제나 민간요법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병원에 와서도 원인 확인을 위한 검사를 받지 않고 ‘약만 처방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 여성이 적지 않다”며 “질염은 증상이 비슷하지만 원인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치료를 받아야 재발과 골반염·자궁경부염·방광염·난임 등 합병증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질염의 70~80%는 곰팡이·세균이 원인=‘냉’이라고도 하는 질 분비물이 평소보다 많이 나오고 질이 가렵거나 따끔거리고 악취가 난다면 질염 등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질 분비물은 일반적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자극으로 배란기에 증가한다. 곰팡이(진균)·세균·기생충 감염으로 질·자궁경부에 염증이 생기거나 자궁경부암 같은 악성 질환이 있을 때도 증가한다.

질염의 70~80%는 칸디다 곰팡이나 세균이 원인이다. 가장 흔한 주범인 칸디다 곰팡이는 피부점막·식도·복막·관절·혈액 등에도 염증을 일으킨다. 이를 통틀어 칸디다증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진료인원 98만여명 가운데 95.5%(94만명)가 여자다. 칸디다증 중 칸디다 질염(외음·질의 칸디다증) 진료인원이 89만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성의 75%가 한 번 이상 경험한다.

칸디다 질염은 질과 외음부에 이 곰팡이가 많아져 생긴다. 통기성이 안 좋고 꽉 끼는 거들·팬티스타킹·레깅스나 생리대·팬티라이너 등도 습한 환경으로 칸디다 질염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질 분비물은 순두부·치즈 같이 덩어리져 있고 백색에 끈적거리지만 냄새가 없다. 외음부와 질 입구가 심하게 가렵고 작열감·동통·성교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거나 면역력이 저하된 임산부·당뇨병 환자에서 잘 발생한다.

치료는 보통 항진균제를 먹거나 질 안에 삽입하는 정제(항진균 질정)를 사용한다. 대부분 며칠 안에 증상이 좋아지고 1주일 안에 곰팡이가 박멸된다. 다만 재발이 흔한 편이다. 1년에 4회 이상 반복되면 6개월간 장기요법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세균성 질염은 락토바실러스균이 줄고 클라미디아·마이코플라즈마·유리아플라즈마 등 혐기성 세균이 증식해 생긴다. 질 분비물이 누렇거나 회색을 띠고 흔히 생선 비린내 같은 악취가 나지만 다른 질염과 달리 성교통이 없어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균성 질염은 질 입구와 외음부 등에만 염증이 생기는 칸디다·트리코모나스 질염과 달리 오래되면 골반염 등으로 진행돼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난임이 될 수 있다.

◇잦은 세척·항생제 오남용은 ‘화’ 자초=트리코모나스 질염은 트리코모나스라는 기생충(편모충)에 의해 생긴다. 거품이 있는 황록색의 화농성 질 분비물이 많이 생기고 생선 비린내 같은 악취를 동반한다. 가렵고 배뇨통·아랫배 통증을 동반하며 외음부가 붓거나 홍반이 생기기도 한다. 세균성 질염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전립선·요도에도 기생하며 주로 성관계를 통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파된다. 목욕탕·수영장, 깨끗하지 못한 변기, 젖은 수건 등을 통해 전파될 수도 있다. 남성은 전립선에서 트리코모나스를 죽이는 물질이 분비돼 대부분 무증상이다. 커플 남성도 함께 항생제(메트로니다졸)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아야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문 교수는 “칸디다 질염은 항진균제, 세균성·트리코모나스 질염은 대개 항생제를 길어야 1~2주만 써도 완치된다”며 “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거나 완치 판정을 받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면 질염이 만성화하고 내성이 생겨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김탁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세균성·트리코모나스 질염 치료에 항생제가 효과적이지만 (질염 또는 다른 질환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질내 유익균인 락토바실러스도 많이 죽고 다시 질내에 서식하기 힘들어져 환자의 50% 이상에서 질염이 재발해 만성화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폐경 여성은 에스트로겐 감소로 질 점막이 얇아지고 분비물이 줄어 건조해진다. 그래서 가렵고 가벼운 자극에도 쉽게 출혈이 일어난다. 점막 세포가 쭈글쭈글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세균 등 감염에 취약해져 염증(위축성 질염)과 화농성 질 분비물이 생기기 쉽다. 에스트로겐 투여가 주된 치료 방법이며 국소적인 질염 증상만 있으면 질 크림, 질정 투여 등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자궁경부암에 걸리면 질 분비물의 악취가 심해지고 피가 함께 섞여 나오기도 하지만 단순히 분비물의 양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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