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뷰] “음악이라는 언어로 소통…그냥 ‘지휘자’이고 싶어” LA 오페라 데뷔하는 마에스트로 김은선

2020-02-19 (수) 12:00:00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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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니제티 ‘로베르트 데브뢰’로 LA 오페라 데뷔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역사상 첫 여성 음악감독

“최초의 여성 지휘자보다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한국인 지휘자’라는 표현이 더 좋아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의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미국 오페라의 역사를 새로 쓴 김은선(39) 지휘자가 LA 오페라 데뷔를 한다. 공연 작품은 도니제티 오페라‘로베르토 데브뢰’(Robert Devereux)다. 오는 22일 오후 7시30분 LA 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개막하는‘로베르토 데브뢰’는 LA 오페라가 한 번도 연주한 적 없고 오케스트라와 배우들 모두 처음 공연하는 작품이다.‘처음’이라서 너무나 신난다는 그는 긴 생머리를 한 올 빠짐 없이 뒤로 묶은 헤어스타일처럼 빈틈 하나 없는 답변으로 30분 내내 살짝 흥분된 어조로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표현력이 뛰어나고 시원한 웃음이 섞인 거침없는 말투가 단번에 마음을 열게 한 그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LA 오페라 데뷔가 사흘 앞이다

▲1월 말부터 LA에 와서 LA 오페라와 연습하고 있다. 오페라는 리허설 기간이 길다. 연출 연습이 4주 정도 소요되고 블로킹도 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와 만난 지 이제 1주 되었는데 새로운 경험이고 즐거운 경험이다. LA 오페라 공연일정이 가장 마지막에 결정되어서 3월8일 공연까지 지휘를 맡는다. 마지막 공연일에 시애틀 심포니 연주회(3월12~14일)가 있고, LA 오페라 공연 중에도 샌디에고 심포니 연주회(28·29일) 일정이 있다.


- 이번 공연 작품을 소개해달라

▲ ‘로베르토 데브뢰’는 도니제티 오페라 중에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은 아니다. 곡의 매력이 넘치고 극적인 요소를 음악으로 잘 전달한 작품인데 아이러니하고 감정을 감추거나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서 어떻게 살려내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연출자인 스티븐 로리스가 노련하고 음악을 잘 알기에 함께 하는 작업이 너무너무 재미있다.

-96년 역사를 지닌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수장이다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루살카’로 첫 연주를 했다. SFO는 지난 2016년부터 상임지휘자가 공석이어서 모든 객원 지휘자들이 후보였다. 매 공연이 끝나면 SFO가 오페라 단원과 스탭, 오케스트라 모두를 대상으로 객원 지휘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상임 지휘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원래 다른 사람,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 <웃음> 객원 지휘자 점심 초대 자리에서 알게 된 이후 끊임없이 대화가 오갔는데 총감독, 예술감독과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다. 조율하는 단계가 없이 셋이 대화가 너무 잘 통해 운명인가 생각될 정도였다.

- 메이저급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된 여성 지휘자로 화제가 됐는데

▲ 임명 발표와 더불어 인터뷰 요청에서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개인적인 생각은 여성 지휘자가 아니라 그냥 ‘지휘자’다. 원래 여성으로 태어났고 이게 바로 저였으니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모든 리더가 어려운 직업 아닌가. 지휘를 공부할 때 은사님이 강조한 말이 있다. ‘지휘자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지휘자에게 나오는 소리는 없다. 앞에 있는 음악가들에게서 나오게 되어 있다. 머릿속에 원하는 소리는 그들이 재현해준다.’ 그게 바로 지휘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오페라 지휘자를 꿈꾼 건 언제인가


▲오페라 지휘자를 꿈꾼 것은 아니고 오페라를 통해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원래 오페라 하우스를 통해 클래시컬 지휘자가 된다. 모든 도시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지휘를 하며 교육 받는 게 유럽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미국처럼 심포니 지휘자와 오페라 지휘자가 나뉘어져 있지 않다. 지휘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공부하게 됐다. 학생일 때 유럽에서 지휘를 하면서 말은 서툰데 앞에서 마구 흔드니 커뮤니케이션이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직업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

- 음악 인생에서 멘토가 있다면

▲지휘를 권해준 연세대 최승한 은퇴 교수, 그리고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디션에서 만난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베를린 필 수장이 된 키릴 페트렌코다. 처음 지휘를 권했을 때 6개월 넘게 고민을 했다. 시작을 하면 후회를 안하는 성격이다. 결정을 하고 힘들더라도 겪고 나면 경험이 되지 않나. 다만 결정을 하기 전에 왜 내가 이것을 하는지가 필요하다.

-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 활동하는데 언어 소통은 잘 되는지

▲연세대 작곡과와 같은 대학원 지휘과를 마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로 유학을 갔다. 언어에 관심이 많고 약간 차이가 있지만 살았던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해왔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어,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영어권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영어는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다. 미국 연주가 늘어나면서 현지 미국인들이 쓰는 표현법을 익히느라 바쁘다.

- LA 오페라 공연을 찾게 될 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LA는 이모가 살고 사촌들도 있어 친근한 도시다. 1989년 처음으로 이모 집이 있는 LA에 왔는데 딱 30년 만인 2019년 할리웃보울 연주를 하러 LA에 왔다. 이모와 이모부가 너무 좋아 하시더라. LA는 특별한 게 있다. 너무 따뜻하다. 오페라 공연에서 심포니 연주와 달리 지휘자가 무대 아래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앞에 서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제가 보이진 않아도 오케스트라가 표현하는 음악을 즐기시면 좋겠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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