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마에 신혼여행 간 부부가 겪는 꿈과 현실 재미있게 그린 해프닝

2020-01-1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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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다시 보는 명화 ‘백인 족장’(The White Sheik·1952) ★★★★½ (5개 만점)

▶ 잡지 속 스타 찾아 나선 신부, 실제 만나지만 실망하는데…이탈리아 거장 펠리니 첫 작품, 진실을 풍자한 로맨틱 코미디

로마에 신혼여행 간 부부가 겪는 꿈과 현실 재미있게 그린 해프닝

‘백인 족장’이 자신의 열렬한 팬인 완다(왼쪽)를 끌어안고 유혹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첫 솔로 감독 작품으로 매력적이요 경쾌하고 곱고 우습고 재미 만점이다.

우리는 살면서 꿈이 필요하나 꿈은 결국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실망을 가져다주게 마련이라는 진실을 풍자한 우화이자 로맨틱 코미디다. 이와 함께 대중의 스타에 대한 열광을 ‘꿈을 깨세요’라며 다독이듯이 희롱하고 있다. 또 눈이 큰 배우들의 약간 과장된 연기도 아주 좋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으로 로맨틱하곤 거리가 먼 시골 남자 이반 카빌로(레오폴도 트리에스테)와 그의 로맨틱하고 꿈 많은 신부 완다(브루넬라 보보)가 신혼여행 차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에서 바티칸 실력자인 삼촌을 비롯한 친척들에게 완다를 보여주고 또 교황을 면접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반이 호텔방에서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완다가 호텔을 빠져 나온다. 완다가 열심히 구독하는 ‘푸메티’의 멋쟁이 주인공으로 루돌프 발렌티노를 연상시키는 백인 족장 역의 페르난도(알베르토 소르디)를 만나기 위해서다. ‘푸메티’는 2차 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만화로 그림 대신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해 거기에 글을 달았는데 내용은 여성 팬들이 좋아하는 로맨틱한 소프 오페라.

완다는 ‘백인 족장’의 본부를 찾아갔다가 엉겁결에 제작팀과 함께 촬영 현장인 바닷가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르난도를 만난다. 눈이 큰 완다가 페르난도를 보고 경탄하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아름다운 완다가 자기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안 페르난도는 완다를 보트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 자기는 아내에게 속아서 결혼을 했다는 등 온갖 감언이설로 완다를 유혹한다. 그러나 완다는 그의 이런 고백이 몽땅 허위라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한편 완다가 실종되면서 이반은 혈안이 되어 아내를 찾지만 속수무책. 눈이 큰 이반이 호텔에서 기다리는 친척들에게 온갖 변명을 하면서 완다의 부재를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우습고도 측은하기 짝이 없다. 밤이 되도록 완다가 돌아오지 않자 고뇌에 빠진 이반은 울고불고 한숨을 들이 쉬고 내쉬면서 자살까지 생각한다.

밤중에 길거리에서 완다를 기다리다 지쳐 축 늘어져 있는 이반 앞을 지나가던 착한 창녀 카비리아가 이반을 위로해주는 장면이 보기 좋다. 카비리아로 펠리니의 아내인 줄리에타 마시나가 스크린 데뷔를 했는데 마시나는 후에 남편의 영화인 ‘카비리아의 밤’과 ‘길’에 나왔다.

새벽에 호텔로 돌아온 완다를 받아들인 페르난도는 바티칸 광장에서 기다리는 친척들과 함께 교황을 만나기 위해 교황청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완다가 남편에게 “당신이 내 백인 족장이에요”하며 고백한다.

음악은 니노 로타가 작곡했는데 그는 ‘달콤한 인생’과 ‘8 1/2’ 등 여러 편의 펠리니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환상적이요 초현실적이며 마법적이자 기이하고 화사하고 서정적이면서 아울러 토속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뜻하는 펠리니 특유의 ‘펠리니스크’ 수법이 느껴지는 상쾌한 작품이다. 새로 복원된 필름으로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 불러바드)에서 상영. (310)478-0401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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