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인한 이혼전쟁, 가슴 찡하게 사실적으로 묘사

2019-11-0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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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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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박 감독 자신의 경험 바탕, 훈훈한 결론의 러브스토리...조핸슨-드라이버 놀라운 열연

잔인한 이혼전쟁, 가슴 찡하게 사실적으로 묘사

이혼 수속 중인 찰리와 니콜(왼쪽)이 전철 안에서도 서로 떨어져 거리를 두고 있다.

결혼 이야기가 아니고 이혼 이야기다. 노아 바움박 감독이 배우인 아내 제니퍼 제이슨 리와의 이혼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연출을 했는데 그는 영화를 이혼에 관한 러브 스토리라고 말했다. 8세난 아들을 둔 두 젊은 부부가 헤어지는 과정을 어떻게나 절실하게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보자니 영육이 통증에 시달린다. 안타깝고 아프고 성질나고 혼란스럽고 슬프고 괴롭고 참담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사랑이 적의와 증오로까지 변질되는 과정을 감독은 뼈를 깎듯이 거의 잔인할 정도로 파헤치고 있는데 이런 아프고 슬픈 얘기 중간중간 느닷없이 깔깔대고 웃게 되는 코믹한 장면과 대사를 삽입해 잔뜩 조여 감던 긴장감과 통증을 달래준다.

그러나 얘기는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다. 이혼이라는 살벌한 얘기를 감독은 가차 없이 껍질을 벗겨 보여주면서도 상냥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감싸 안는데 마지막 장면이 아주 곱고 희망적이다. 절로 미소가 번져 나온다. 이 영화는 역시 이혼 문제를 다룬 잉그마르 버그만의 ‘결혼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브루클린의 연극감독 찰리(애담 드라이버)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지만 다소 이기적이다. 그의 아내 니콜(스칼렛 조핸슨)은 남편 극단의 주인공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줄줄 아는 착한 여자로 할리웃의 부름을 거절하고 남편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둘 사이에는 8세난 아들 헨리(애지 로벗슨)가 있다.

니콜은 자신이 남편이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이혼을 요구한다. 독립해 성공할 수 있는 자신이 더 이상 남편의 필요와 이고의 희생자가 될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혼에 들어가는데 둘은 다투고 욕하고 적의와 증오를 표시하면서도 아직도 서로를 생각하는 사이다.

니콜은 헨리를 데리고 TV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어머니(줄리 해거티)와 자매(메릿 웨버)가 사는 LA로 이사한다. 그리고 막강한 최고급 변호사 노라(로라 던)를 고용한다. 노라는 니콜에게 “스무스하게 처리하마”라고 말하는데 그건 괜히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찰리도 변호사(앨란앨다와 레이 리오타)의 조언에 따라 헨리를 아내와 공동으로 양육하기 위해 LA로 임시 이주한다.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를 앞장 세워 이혼 전쟁에 돌입하는데 전투 과정이 매우 치열하다. 이 전투에서 크게 다치는 사람은 찰리. 그가 속이 아파 노래마저 부르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련 측은하기 짝이 없다.

조핸슨과 드라이버가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깊고 사실적이요 영혼을 뒤흔드는 연기로 보는 사람을 그들의 감정과 육체적 통증에 끌어들이고 있다.

둘과 함께 볼만한 것은 던의 야단맞게 으스대는 연기. 변호사가 얼마나 허세 당당한 무서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연기다. 대사가 지극히 사실적이요 음악(랜디 뉴만)도 좋은데 특히 모든 것을 니콜과 찰리의 관점에서 본 촬영이 뛰어나다. 바움박은 이 촬영을 버그만의 ‘페르소나’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Netflix.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지역.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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