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들 없었다면 아직도 면죄부 돈주고 사고팔지도…

2019-11-07 (목) 준 최 객원 기자
크게 작게

▶ 루터·칼빈에 가려진 종교개혁가 5인
기욤 파렐 : 불어권 종교개혁 앞장 존 칼빈의 참여 설득

▶ 슈벵크펠트 : 독일서 초기부터 동참 탄압 피해 미국 이주, 필립 멜란히톤 : 루터 친구였던 신학자 ‘신학 총론’ 최초 저술

이들 없었다면 아직도 면죄부 돈주고 사고팔지도…

스위스 제네바 바스티온 파크에 설치된 종교개혁가들을 기념하는 조각벽. 왼쪽부터 기욤 파렐, 존 칼빈, 테오도어 드 베즈, 존 녹스. [AP]

2년 전인 2017년은 기독교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종교개혁하면 흔히 마틴 루터, 존 칼빈, 울리히 츠빙글리 등의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16세기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이 많고 대부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학자, 성직자, 학자 등이었다. 기독교 매체 크리스천 포스트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종교개혁가 5인을 재조명했다.

◇기욤 파렐(1489-1565)

종교개혁가이자 설교가인 기욤 파렐은 불어권 스위스인들에게 종교개혁을 촉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태생인 파렐은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1517년 파리 대학을 졸업한 이후 종교개혁 지지자로 전향했다. 대립적인 성향의 설교가로 알려진 파렐은 제네바로 이주, 존 칼빈에게 엄격한 개신교 사회 건립 운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들레헴 신학대학의 조너선 바워스 신학 및 철학과 교수는 “사자처럼 담대하고 때로는 분쟁적이었지만 불어권 국가의 영적 활력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라고 파렐을 평가했다. 파렐은 1524년 사도신경과 주 기도문을, 1529년에는 초기 종교개혁 가르침을 불어로 해석하는 등 불어권 종교개혁에 앞장선 인물이다.

◇카스파르 슈벵크펠트(1489-1561)

독일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슈벵크펠트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법원의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발생 직후 종교개혁 움직임에 동참했다. 초기 루터 주의에 접근했지만 성찬론 등에서 이견이 생겨 1526년 독자 종교개혁 노선을 걷기로 결정했다. 슈벵크펠트가 전개한 종교개혁 독자 노선은 ‘그리스도 영광의 고해 신부’(Confessor of the Glory of Christ) 또는 일명 ‘슈벵크펠터스’(Schwenkfelders)로 불렸다.

카톨릭과 루터파의 중간노선을 지향했으나 양쪽으로부터 적지 않은 탄압을 받고 결국 슈벵크펠트는 도피 생활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슈벵크펠터의 추종자들은 이후 탄압을 피해 1734년 경 펜실베니아로 이주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커뮤니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피터 마터 버미글리(1499-1562)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역에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피터 마터 버미글리는 탁월한 하나님 말씀의 종이자 종교개혁자로서 존 칼빈과 더불어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버미글리는 1525년 카톨릭 사제로 임명받았지만 1540년 종교개혁의 물결에 동참하게 된다. 고향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버미글리는 중부 유럽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하다 1547년부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리 여왕이 즉위한 뒤 카톨릭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해 다시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왔다.

W. 로버트 갓프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 박사는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경건함과 탁월한 지식 등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라고 버미글리를 평했다. 버미글리의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을 맡은 조시아 심러는 버미글리를 ‘다양한 국가와 도시들에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추도했다.


◇후안 페레즈 피네다(1500-1567)

피네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배경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개신교로 전향한 피네다 역시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 지역으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 중 잠언, 개신교 관련 서적을 스페인으로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19세기 문학 평론가 마르셀리노 메넨데즈 펠라요는 피네다의 잠언 번역서를 최고의 스페인어 번역서로 꼽았다. 피네다는 스페인 세빌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로 스페인 복음주의계에서 여전히 추모되고 있다.

◇필립 멜란히톤(1497-1560)

교육자이자 신학자인 멜란히톤은 독일 태생으로 루터 교회의 신앙 고백인 ‘아우구스브루크 신앙 고백’(Augsburg Confession)의 주요 저자다. 마틴 루터의 친구였던 멜란히톤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Paul’s Letter to the Romans)를 강의했으며 1521년 개신교 최초 조직 신학서인 ‘신학 총론’(Loci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을 저술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은 신학 총론을 필독서로 지정했고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신학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신학 총론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준 최 객원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