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리막 등산…오르막 하산…고행+매력의 15마일 코스

2019-10-25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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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Ross Mountain (7,402’)

내리막 등산…오르막 하산…고행+매력의 15마일 코스

Ross Mountain 정상부에서 바라보이는 Mt. Baden Powell

내리막 등산…오르막 하산…고행+매력의 15마일 코스

등산로에서 만나는 수령 2000년의 의연한 소나무 ‘Waldron Tree’


내리막 등산…오르막 하산…고행+매력의 15마일 코스

Mt. Baden Powell(9,399’)에서 Ross Mountain으로 이어지는 능선.



이따금 주변사람들이 내가 등산을 취미로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면, 왜 산에 가느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있다. 이백의 ‘산중문답’을 표절하여 “문여하사답천산 소이부답심자락 기화요암시방첩 별유천지비인간” (왜 산을 가느냐 내게 묻는다. 웃음지을 뿐 답하지 않으나 마음은 벌써 즐겁다. 기이한 꽃 아름다운 바위 사방팔방에 첩첩하다. 별유천지라네 인간세상이 아닌 것을)이라며, 미소와 침묵으로 응대한다면 이는 어쩌면 그 분에게는 다소 불쾌한 일이 되어질 것이다.

차제에 산에 오른다는 것은 어떠한 매력이 있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첫째, 등산은 그 자체가 분명 힘이 많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확실히 즐겁고 재미있는 취미활동이다.

둘째, 심신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유익한 운동이다. 정신의 휴식과 만족은 물론이고 심장, 폐, 근육 등의 육체가 단련되어, 노년에도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셋째, 등산은 대개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 친밀감이 돈독하고 막역한 친구나 동료가 있어 행복지수가 향상된다.

넷째,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의 정취도 물론이지만 특히 정상에 올랐을 때의 경치는 대단히 아름다우므로, 산을 통하여 경이롭고도 행복한 미적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다섯째, 도시화된 문명을 벗어난, 원시의 대자연을 접하게 되고, 다양한 식물, 동물, 지질, 지형을 만나게 되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여섯째, 정상에 오른다는 목표를 가지고 꾸준한 노력과 인내를 통해 이를 달성해 냄으로써, 반복되는 일상생활 그 자체에서도 풍성한 성취감을 거듭 누리게 된다.

일곱째, 산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더욱 활기와 행복감을 느끼게 되므로, 세속의 명리만을 추구하는 일상을 탈피하여 ‘왜 사냐건 웃지요’ 나 또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없이 살라하네’ 의 경지를 닮아보려는 그런 맑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


오늘은 이상에서 예거한 등산의 매력을 역시 두루 잘 충족시킨다고 믿어지는 산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Ross Mountain(7402’)을 찾아간다.

San Gabriel 산맥에서 한 손안에 꼽아지는 가장 높은 산인 Mt. Baden Powell(9399’)에 오른 후, 다시 가장 낮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하염없이 계속 내려가는 양상의 산행이 된다. 즉, “등산 3200’+하산 2300’”형식의 등산을 한 후에 다시 “등산 2300’+하산 3200’”형식의 하산과정을 밟게되는 특이한 행로이다.

험준한 San Gabriel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들과 가장 깊숙한 계곡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찔하리만큼 웅대한 전망을 줄곧 바라보면서, 가장 깊은 심부이며 오지인 곳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대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아득한 천상세계와 아득한 지하세계를 당일로 왕래해내는 신들의 전령 Hermes의 활약상이라 볼 수 있겠다.

왕복 15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가 5500’가 되는 힘든 산행으로 10시간 내외가 걸린다. 대단히 아름답고 향기로운 솔숲을 지나는 산행이지만 또 많은 구간에서 햇볕에 노출되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고, 도중에 물을 구할 수 없으므로 충분한 식수를 지녀야 한다.

또한 편도 4마일거리의 Mt. Baden Powell에 오른 후에, 다시 3.5마일이 되는 Ross Mountain까지의 내리막 구간은 경사도 가파르고 도중에 사람을 조우할 가능성도 거의 없으므로, 안전을 위하여 절대로 혼자서 산행을 해서는 안된다.

가는 길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등산시작지는 Vincent Gap이다. 210번 Freeway에서 La Canada의 2번도로(Angeles Crest Highway)로 나와서 동쪽으로 53마일을 가면(도로변의 Mileage Marker는74.8), 오른쪽으로 표지판이 있는 큰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약 100년전까지 이곳에서 금광(Bighorn Mine)도 하고 사냥도 하며 살았던 Charles Tom Vincent란 사나이의 이름을 붙인 Vincent Gap이다. LA한인타운에서 약 64.5마일의 거리가 되며, 차로 100분 내외가 소요된다.

동쪽에서 오는 경우라면 15번 Freeway의 Wrightwood Exit에서 내려(138번 도로), 좌회전하여 8마일을 가면 2번 Highway의 Junction을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2번 도로로 들어가 14마일을 가면 왼편으로 Vincent Gap주차장이 나온다.

등산코스

등산시작점(6565’)은 주차장 서북편의 화장실 왼쪽에 있다. 백인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초기에 이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이 Ross Mountain의 산행구간은 크게 2개로 구분하여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우선, 제1단계로 Mt. Baden Powell의 정상까지 오르는 루트를 안내한다.

편도 4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가 대략 2900’가 되므로 많이 가파르다고 할 수 있겠다. 거의 전 구간이 PCT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등산로는 1934년에 조성되었는데, Mt. Baden Powell의 동북쪽 밑에서 곧장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오르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인 산의 특성상, 아래쪽에서는 지그재그의 길이가 길고 위로 가면서 차츰 짧아지는 모양인데, 모두 41번의 굴곡(Switchback)을 이루고 있다.

등산로는 대체로 키가 큰 나무들( Oak Tree, Jeffrey Pine, White Fir, Lodgepole Pine, Limber Pine 등)이 밀집되어 있어 향긋한 나무그늘 아래로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는데,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동쪽으로는 Mojave 사막, 남쪽으로는 Mt. Baldy 쪽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등산시작점에서 약 1.5마일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샛길이 나 있고, ‘Lamel Springs’라는 안내팻말이 있다. 대략 200미터되는 거리에 있는 샘이다. 이르는 길이 다소 위태롭고, 건기에는 거의 물이 없기 때문에 이를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냥 직진하여 계속 지그재그로 길을 따라 올라 간다. 대략 3.5마일을 왔을 지점의 능선에서 2000년 묵은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표지판이 있다. 1950년대의 LA지역의 Boy Scouts의 간부였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Waldron Tree”라고 명명된 이 나무는, 1962년에 Angeles National Forest의 감독관이었던 Sim Jarvi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단다.

이 쯤의 고도(9000’)에선 좌우의 전망이 대단하다. 우측으론 메마르고 광활한 사막이, 좌측으론 깊고 넓은 협곡과 계곡 그리고 높고 웅장한 산들의 푸르른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Mt. Baden Powell의 정상 바로 아래 지점에서 길이 갈라진다. 표지팻말이 있어서 잘 알 수 있는데,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인 PCT를 따라가면 Burnham, Throop, Hawkins에 이어 Windy Gap이 나오고, 더 가면 Islip Saddle(8마일)에 닿게 된다.

우리는 왼쪽의 오름길로 간다. 곧바로 Mt. Baden Powell 정상이다. 일망무제! 선경이 따로없다. 이 Mt. Baden Powell은, 1931년까지는 Mt. North Baldy라고 불리웠다는 사실이 말하듯이, Mt. Baldy와는 San Gabriel River의 동강(East Fork)이 흘러내리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북쪽편에 우뚝 솟아있어 매우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고 있는 산으로, 그 높이가 백두산(2744m)보다 높은9399’(2867m)에 달한다.

우뚝 솟은 고봉의 정상인지라, 동서남북의 광활하면서 변화가 큰 아름다운 경개를 다 보게된다. 가능하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사방의 지형이나 원근의 숱한 산들의 이름을 익혀본다. 특히 동쪽으로 펼쳐있는 산들이 웅장하다. 밝은 빛을 띄고있는 최고봉이 바로 Mt. Baldy(10064’)이다. 그 왼쪽으로는 Dawson(9575’), Pine(9648’)이 역시 두드러지고, 오른쪽 아래로 약간 낮으면서 진한 색조를 띄고 있는 험산이 바로, 오르기 힘들다고 하여 ‘Big Bad Iron’이라고도 별칭되는, Iron Mountain(8007’)이다.

잠시 휴식을 겸하여 Mt. Baden Powell 정상에 세워져 있는 Sir Baden Powell의 Monument을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자. 1931년에 이 산의 이름을 Mt. North Baldy에서 Boy Scouts의 창립자의 이름을 넣어 Mt. Baden Powell로 바꾸게 했고, 바로 이웃한 봉우리도 ‘Boy Scouts’의 아이디어를 Baden Powell에게 제공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Mt. Burnham(8997’)으로 지정케 했다.

이젠, 제2단계로 이곳 Mt. Baden Powell(9399’)의 정상에서 남쪽으로 있는 Ross Mountain(7402’)을 향하여 등산 아닌 하산을 하는 루트가 시작된다. Mt. Baden Powell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의 고점을 타고 내려간다. 왼쪽 멀리로는 Mt. Baldy와 그 주변의 고봉들이 하늘의 요새인양 웅장하고, 왼쪽 가까이 발아래로는 깎아지른 듯 가파른 Vincent Gulch, Mine Gulch 등의 San Gabriel River의 원류가 되는 협곡들이 수직으로 거의 1마일이나 되는 아스라한 거리에서 대지의 혈맥인양 하얗게 이리저리 뻗어있는 모습들이 아찔한 두려움을 자아낸다.

대략 1마일의 경사진 능선을 내려오면 이젠 잘 자란 큰 소나무들이 무성한 널찍한 평지가 된다. 해발고도가 약 8300’가 되는 곳이다. 이 부근의 어디쯤에 되돌아 올 때 마실 수 있도록 여분의 물을 감추어 두면,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겠다. 다시 희미한 발자취의 등산로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이동한다.

다시 1.5마일쯤을 지난 지점에 이르면 다시 가파른 내리막 능선이 시작된다. 다시 한번 물을 내려 놓을 만한 자점이다. 이 능선을 내려선 뒤에도 크지않은 봉우리들을 3~4개를 오르고 내리며 약 1마일을 더 가야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등산객들이 지나다닌 발자취가 선연하게 드러나므로 등산길을 따라가는데는 문제가 전혀 없다.

마침내 오래 전에 고사목이 되어 회색빛으로 탈색된 한 그루 마른 관목의 줄기가 부채살 모양으로 땅에 깔려있는 곳에 이르른다. Ross Mountain(7402’)정상으로 등록부가 있다. 힘들여 여기에 왔고 또 힘들여 다시 돌아가야 하니 한마디 소감과 이름을 남길 일이다.

Iron Mountain이 바로 눈앞이고 그 왼편의 Baldy, Dawson, Pine이 멀지않다. 우측으로는 San Gabriel River의 East Fork가 흘러내리는 계곡이 깊다. 여기서 아마도 1마일 남짓될 거리에 Narrows와 Bridge to Nowhere가 있을 것이다. 서쪽으론 Mt. Hawkins(8850’)에서 흘러내려온 Copter Ridge(7499’)가 있고, Rattlesnake Peak(5826’)도 볼 수 있다. 이곳이 San Gabriel산맥에서는 가장 외진 깊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내려온 3.5마일 길이의 산줄기가 구불구불 Mt. Baden Powell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되돌아 올라가야 할 일이 아득하다. 전령의 신 Hermes로부터 날개 달린 모자(Petasus)와 구두(Talaria)를 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부질없다. 다만 무심으로 오르고 또 오르면 되는 일이거늘.

정진옥 310-259-6022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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