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세법은 그 나라 국민들의 고유한 철학과 그들이 대체로 동의한 정책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세법이 미국과 다른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은행들은 세금 15%를 먼저 떼고 이자를 준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세입자들은 세금 25%를 먼저 떼고 건물주에게 월세를 준다. 그 만큼 그 나라 정부는 자기 국민들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다. 참 슬픈 얘기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스위스의 어느 대학원에서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의 ‘회계 투명성’ 순위에서 미국은 거의 1등이다. 한국은 거의 꼴찌고, 아르헨티나는 그보다 더 꼴찌다. 자기 나라 사람들이 당연히 정직하게 세금을 낼 것이라고 믿는 정치인들이 만든 세법. 그리고 자기 나라 사람들은 으레 세금을 떼어먹을 것이라고 믿는 정치인들이 만든 세법. 그러니 이런 비교 자체가 사실은 억지다.
그런 제도를 떠나서 내가 이 나라, 아르헨티나에 와서 (회계사로써) 더욱 깜짝 놀란 것은 거짓말에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다는 것. 은행에 대출받을 때는 매상이 1000원인데, 국세청(AFIP)에 세금 낼 때는 매상이 100원으로 내려간다. 어쩌면 비자 스폰서를 해주기 위해서 다시 500원으로 올리고, 자녀의 사립대학 등록금을 안 내기 위해서 매상은 속절없이 50원으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고무줄도 이런 고무줄이 없다.
물론 이것은 여행지에서 잠시 만난, 말도 잘 안 통하는 아르헨티나 사람이 과장한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짓말에도 상식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굶으러 들어간 단식원의 식재료비가 일반 식당보다 더 많다면 그 말을 누가 믿을까? 네일가게 수표로 명품 가방을 샀다면 그것을 나중에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거짓말이 지속되면 대부분의 진실은 묻히고 결국에는 그 구분도 모호해진다.
내년부터 한국에 참 독창적인 회계감사 법이 생긴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40년 동안 해왔던 ‘친한’ 회계사가 아닌, 정부가 강제로 지명한 ‘지금은 안 친한’ 다른 회계사한테 가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800개 넘는 회사들이 해당된다고 한다. 지금 그 나라는 회계사 하나 조차 내 맘대로 고르지 못할 만큼 회계가 회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외부에서 개혁하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미리 자정할 수는 없었을까? 배운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
얼마 전, 서울경제신문 보도 ‘회계투명성 꼴찌수준인데.. 회계감사 적정의견 98%는 난센스’ 기사를 보면, 같은 회계사로써 참 낯부끄럽다. 미국에서는 적정의견 주는 비율이 66%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믿음이 간다. 회계사비를 한 시간에 70달러 밖에 못 받는 그 나라의 회계사들도 불쌍하고, 못 믿을 재무제표 때문에 비싼 이자를 내야하는 그 나라의 기업들도 불쌍하지만, 가장 불쌍한 것은 그런 기사를 읽어야 하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다. 두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참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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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