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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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불사 꿈 키우는 마리나 우리절 운월 스님

2019-10-17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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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이 다 인연이죠”

새 불사 꿈 키우는 마리나 우리절 운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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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전사 출신이다. 2년안팎 일반사병이 아니다. 특전사의 핵이라는 7년 장기복무 하사관이었다. 그는 또 격투기 매니아였다. 군에서 배운 살인적 특공무술은 물론 태권도 복싱 킥복싱에다 태국의 전통무술 무에타이까지 안해본 격투기가 거의 없었다. 제대후에는 성남에서 격투기도장을 운영할 정도였다.

몬트레이 북쪽 마리나 주지 운월 스님(사진) 이야기다. 1번 프리웨이와 나란한 이면도로 옆 미니상가 2층 우리절을 찾은 것은 11일 오후, 금요일 해질녘이 가까워서인지 사뭇 조용했다. 그리고 정갈했다, 눈썰미 손맵씨 좋은 비구니 스님이 가꾸는 조그만 절(법당 응접실 등 합쳐 약 1,200스퀘어피트) 같다고 할까. 잔잔한 독경소리가 창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몇 줌의 차량 소음을 무마하는 가운데 삼존불이 촛불을 받아 온화한 미소를 보내고 연등들은 붉고 푸른 색감을 더한다. 특전사니 격투기니 스님의 억센 이력과는 달리 아기자기 깔끔한 우리절의 장식품 거의 모두가 스님의 작품이라니 더욱 놀랍다.

개폐식 서랍과 여닫이식 수납고 등 협소공간 최대활용 지혜가 곳곳에서 짚혀지고, 그냥 붙였으면 그저 그랬을 불화나 글귀가 스님이 주워오고 얻어온 나무토막을 다듬어 반듯하고 윤기나는 틀을 만들어 씌워놓으니 훨씬 그럴싸해 보인다. 바닥도 벽도 군데군데 놓인 이런저런 물건들도 스님이 밤낮없이 재고 자르고 바르고 마름질해 꾸민 것들이다. 심지어, 버려진 목재 싱크대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불단도 새로 산 것 못잖다.


“대학 때 산업디자인을 했어요. 실은 인테리어(interior)보다는 엑스테리어(exterior)가 전공인데...”

전기며 배수며 목공까지, 스님의 솜씨는 또 있다. 알고보니 구미전자공고 출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이 학교는 ‘전액국비 무료기숙 전원취업’ 등 혜택이 많아 전국에서 가난한 우등생들이 몰려든 명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전자기능공도 산업디자이너도 아닌 장기복무 특전요원이 됐을까. 아니 그보다는, 제대후 운영한 격투기도장마저 접고 출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산중생활을 좋아하니까...” 뜸을 들였다 다시 물었다. “남들 같으면 안겪을 일을 참 많이 겪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군대 때만 해도, 0.00몇초 차이로 묵숨이 왔다갔다 하는 후방침투 낙하훈련, ‘인간이길 포기하라’는 구호가 붙었다는 해군특전단(UDT) 해상침투훈련, 죽느냐 사느냐 무장공비 소탕작전 등. 장대비 속에 통신장비를 갖고 산상에서 훈련하다 벼락도 맞아봤다. 바로 옆 전우는 순식간에 신체 일부가 타버렸고 자신은 ‘천만다행 약간의 충격’에 그쳤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자신 불교집안에서 자랐다. “특히 어머님이 (불교에) 열심이셨고, 5촌 6촌 스님들도 계셨고, 군법회 때는 외출 안나가면 꼬박꼬박 군법사님 법문을 들었고...” 그러나 출가는 쉽지 않았다. 한 집의 맏이에다 그 집안의 장손이기에 어른들을 설득하느라 족히 5년은 걸렸다. 그가 비로소 봉화 청양사에서 지현 스님(현 조계사 주지)을 은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것은 2000년. 이후 스님은 2002년 동국대 불교학과 진학,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후쿠오카 소재 큐슈산업대 1년 유학, 동국대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등 ‘빡센 만학도’로 30대 후반을 다 보냈다. 그런 끝에 2009년 1월 북가주에 왔다.

“대석 스님(당시 카멜 삼보사 주지) 덕분에 오게 됐는데...한 1,2년 있다 갈 생각이었는데...” 그는 벌써 11째다. 그간 그는 청소년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등을 맡는 한편으로 카멜-서니베일을 오가며 한의학을 공부했다. 재작년 10월에는 “여기 신도님들이 베트남절 이런 데 다니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우리절을 개원했다. 꼬박 2년 외부행사나 언론접촉을 삼간 채 우리절 가꾸기에 몰두해온 스님은 이제 채소와 약초를 키우고 포행과 건강체조도 할 수 있는 절터를 알아보는 중이다.

이리 보면 머물지 않는 수행자 같고 저리 보면 머물지 못하는 방랑자 같은 그의 점선 궤적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차를 따라주며 스님은 나직하게 말했다. “우연도 없고 필연도 없고 이 모든 것이 다 인연이죠.” 갈 길 먼 맨손불사 새 꿈을 꾸는데 걱정은 없을까. 답은 해우소에 붙여놓은 글귀에 있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벳의 속담 내지 해탈의 서(書)라 한다

<정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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