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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욕심과 서원

2019-10-10 (목) 광전스님 / SF여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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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귀국해 서울 조계사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조계사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다보니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보살님들이 법당에서 간절한 목소리로 화엄성중(華嚴聖衆)의 명호(名號)를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수능시험을 앞둔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수능고득점을 발원(發願)하는 기도(祈禱)였다.

그런데 법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보살님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나를 알아본 그 보살님은 반가운 얼굴로 차 한 잔을 함께 나눌 것을 청했다. 근처 찻집에서 그 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은 끝에 보살님이 나에게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질문의 내용은 ‘아들이 수능점수를 잘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내 아들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녀와 경쟁해 이겨야 내 아들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므로 내 아들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가?’하는 마음의 갈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욕심(慾心)과 서원(誓願)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예를 들자면 ‘내 아들이 명문대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을 합격해 판사나 검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모님이 기도를 한다고 가정하면, 단순히 ‘내 아들이 검사나 판사가 되어 일신의 명예와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으로만 기도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욕심에 그치는 기도가 될 것이고, ‘내 아들이 장차 검사나 판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에 도움을 주고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부처님의 일꾼이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여러 중생을 위한 서원에 입각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기도를 하더라도 개인적인 욕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기도를 하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도 합당하고 기도의 가피도 더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부처님의 근본서원(根本誓願)을 본원(本願)이라 하고 대표적인 본원으로는 (大無量壽經)에 나오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48대원, (藥師經)에 나오는 약사여래(藥師如來)의 12대원을 들 수 있고,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서원을 간단히 표현하면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중생을 다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 불법을 배워 번뇌를 끊고 불도를 이루겠다는 부처님의 본원이 없다면 자기 자신의 구제에만 그치는 소승(小乘)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欲界)라고 한다. 욕계란 욕심이 많은 중생들이 사는 세상이란 의미이다. 때문에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이기적인 욕심을 떠나서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며 생활해야 하는가? 욕심이 아닌 서원으로 기도하며 생활해야 한다. 욕심은 크면 클수록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지만, 서원은 크면 클수록 우리를 굳건하게 해주며 행복으로 이끈다.

<광전스님 / SF여래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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