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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조실 보선 큰스님 1일 대승사 법문

2019-09-05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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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수행해야”

1966년 용암사에서 천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72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역임, 대흥사 주지 역임, 총무원 제11대 중앙종회 의원 역임, 총무원 제13대 중앙종회 부의장 역임,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조실(현), 총무원 제14대 중앙종회 종회의장 역임.

해남 대흥사 누리집에 실린 조실 상월 보선 큰스님의 ‘간추린 이력’이다. 경실련 공동대표 등 ‘빠뜨린 이력’에도 굵직한 것이 한둘 아니다. 종단안팎 개혁세력을 대표해온 보선 큰스님에게 차고를 개조해 만든 길로이 대승사(주지 설두 스님)의 임시법당은 좁고 초라했다. 스님은 개의치 않고 법문을 펼쳤다. 1일 일요법회에서다. 지난달 22일 대승사에서 온 뒤 두 번째다.

당초 스님의 첫 법문은 1일로 예정돼 있었다. 대승사는 지난해 가을 산타클라라 주택가에서 길로이 임시법당으로 옮긴 뒤 ‘임시로’ 월2회 일요법회를 해왔다. 해남에서 인천을 거쳐 북가주까지, 긴 여정의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스님이 8월25일 예정외 법문을 하게 된 것은 잘못 예고한 기자의 깜박실수 때문이었다. 스님은 그날 오후 다른 약속으로 시간이 빠듯했음에도 잘못 알고 찾아온 몇몇 불자들에게 흔쾌히 말씀보따리를 풀었다.


반전이 있었다. 스님은 기왕에 대승사의 격주 일요법회를 “단 몇 명이 오더라도, 매주 꾸준히”라는 당부와 함께 매주 일요법회로 되돌리게 했다. 설두 스님은 군말없이 스승을 따랐다. 오보로 빚어진 일을 도리어 일요법회 정상화(주례화) 계기로 삼아버린 스님의 유연한 사고 덕분에 대승사는 다시 매주 일요법회를 하게 됐다.

보선 큰스님의 1일 법문(사진) 초점은 시작도 중간도 끝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수행정진’으로 모아졌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입니다. 말로는 다 알죠. 조사들께서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알고 모르는 것은 듣는 사람들에 달렸어요. 다 알아들으면 그것이 바로 니르바나, 열반입니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간단히 말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정리한 뒤 “날마다 좋은날인데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탐진치 때문”이라며 “염불, 간경, 참선, 육바라밀 등 각자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서 끝장을 보라”고 강조했다.

끝장을 본다? 스님은 몰입, 즉 삼매로 설명했다. “하다못해 낚시삼매경 독서삼매경이란 말도 있는데 하물며 수행은...단 1분1초라도 부처님을 떠나보내면 안됩니다.”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화두로 유명한 조주 선사의 예를 들며 화두 하나를 들어도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걸을 때나 머물 때나 앉으나 누우나 말할 때나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골똘히 참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스님이 문득 물었다. 선뜻 답이 없었다. 스님은 더 캐묻지 않았다.

“돈 명예 권력, 그런 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들어올 때는 좋을지 몰라도 나갈 때는 고통으로 다가와요, 매달릴 필요가 없어요.”

보선 큰스님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다 50대 후반에야 능지기 벼슬을 얻고 80세에 정승이 된 조선시대 명재상 허목(1595년~1682년)을 예로 들어 벼슬을 탐내지 않고 매순간 충실한 덕분이라며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는 ‘지금, 여기’를 증득해야 해탈한다, 그래야 생과 사를 초월할 수 있다, 그 안에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정진이라는 말로 마감했다.

<정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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