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2019-08-29 (목) 12:00:00

김혜영 ‘내밀한 움직임’
찻잔 속의 스푼
노란 봉투 속의 편지
보드라운 종이 위에 글씨를 눌러쓰던 손
아침의 웃음소리
의자에 걸쳐진 여인의 하얀 셔츠
열린 창문, 공기
블랙버드의 노래
또 다른 새의 침묵
11월, 그리고 여름
사랑해, 내가 말하면
영원의 백배만큼 사랑해, 라고 대답하는 아이
나뭇가지 끝에 걸려있는 피아노 소리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길
떠 흐르는 슬픔, 잃어버린, 백조
Paige Riehl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전문
임혜신 옮김
세상 것들은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아무리 잡으려 안간힘 써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이 시 속의 것들도 그렇다. 한 잔의 차도, 아름다운 편지도, 새의 울음도, 엄마를 백만 배나 더 사랑한다던 아이의 목소리도, 백조도, 11월도, 5월도, 겨울도 결국은 다 사라져 간다. 그런데 왜 사라져가지 않을 거라 했을까. 그것은 스쳐간 기억들에 영원이 담겨있는 때문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것은 존재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영원은 오직 순간 속에 있다. 순간만이 영원으로 가는 문이며, 그 문을 열어 영원으로 안내하는 열쇠는 사랑이다. 사랑할 때, 순간들은 영원이라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임혜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