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웃사랑·생명존중, 기본으로 돌아가자”

2019-08-21 (수)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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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기사건, 교계 해결책은…“총기규제 강화 당연”

▶ 각계 목소리 높은 가운데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근본 원인 해결책이라는 공감대 형성 분위기

“이웃사랑·생명존중, 기본으로 돌아가자”

컬럼바인 총기 참사 20주기를 맞은 올해 4월 희생자를 추모하는 십자가가 세워졌다. [AP]

미국의 올 여름이 온통 피로 물들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잇따라 발생하는 대형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눈물샘도 마를 날이 없다. 이와 동시에 총기 규제 강화를 외치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연일 이어지는 총기 사건과 총기 규제 등에 관한 교계 입장을 살펴본다.

총기 난사는 사회적 질병

가톨릭 교계는 최근 잇따른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가장 발 빠르게 성명을 발표하고 그간 꾸준히 강조해 온 강력하고 책임 있는 총기 규제법 제정을 다시금 촉구했다.


미국주교단(USCCB)은 성명에서 “총기 난사는 우리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과도 같다. 수없이 반복되는 총기 난사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며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도 아울러 당부했다.

자비를 강조해 온 불교계는 기본 철학인 불살생과 비폭력주의를 상징하는 ‘아힘사(Ahimsa)’ 교리를 최대한 고수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좀 더 실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누군가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기로 난사할 때조차 가만히 앉아서 명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불교계도 28년 전 애리조나에서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총기 사고로 9명의 불자가 희생당한 아픔이 있다.

개신교계는 총기 규제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분분해서 하나로 입장이 모아지기 어렵지만 총기 관련 규제보다는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의지할 곳은 하나님 한 분이며 이를 복음전파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종교적 접근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수정헌법 제2조 아직 필요한가?

미국에서 민간인이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된 배경은 수정헌법 제2조 때문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후 행여 발생할지 모를 독재와 폭정에 대항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제적인 정부에 맞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총기 소유가 합법화됐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견제용보다는 국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위협하는 끔찍한 무기로 전락해버려 수정헌법 제2조의 필요성 재고 및 총기 규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더욱 뜨거워지는 형국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총기 난사 사건만 보더라도 개학을 앞두고 주말 샤핑에 나선 가족들이 총격에 희생되고 동네 음식 축제에 참가했다가 아까운 생명을 잃는가 하면 학교에서 수업하다가 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갑작스런 총격에 희생되는 등 삶의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장소에서 무방비로 희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총기 수가 미국 인구수에 거의 육박하는 3억 정에 달한다는 통계를 감안할 때 지금에 와서 총기 소지를 전면 불법화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공통적인 종교 가르침은 ‘사랑’

일부에서는 총기 규제가 종교적 이슈인가를 고민하기도 한다. 생명 존중을 중요시하는 종교적 시각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과 더불어 총기 사건을 예방하고 범인 치료 및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법보다 종교적 접근이 근본적인 원인 해결일 수 있다는 공감대는 커가고 있다.

잇따른 총기 사건 후 교계에서 내놓는 다양한 논평들도 총기 소유 규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려는 노력이 여실히 눈에 띈다.

불교계는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어하지 못해 저질러진 사건들이 많고 아무리 죄를 지은 범인이라도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비난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담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총기 규제 강화를 오랫동안 주장해 온 가톨릭 교계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남의 생명도 그리고 자신의 생명도 모두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도덕적인 신앙관이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

개신교계도 유명 목회자들마다 한결같이 ‘원수라도 내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며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세상 사람들을 자신의 죽음으로 용서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본받아 원수조차 사랑하며 구원받도록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한다는 것. 미국내 30여만개에 달하는 교회의 사명은 예수의 사랑을 담은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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