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겨운 시애틀 장터 정취에 젖어볼까

2019-08-09 (금) 글= 유정원 객원기자 / 사진= Wikipedia
크게 작게

▶ 시애틀-파이크 플레이스 마켓...‘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미국서 가장 오래된 곳, 1,000만명 관광객 찾아 세계 명소 33위에 올라

▶ 길거리에 연주를 벌이는 버스킹 아티스트들 넘쳐...시장 주변엔 각종 공예품과 맛집이 즐비

시애틀은 동부 뉴잉글랜드의 붉은 벽돌이 빚어내는 분위기와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융통성이 적당히 버무려진 도시다. 두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전혀 새롭고 독특한 서북미 문화가 촉촉이 내리는 보슬비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시애틀에 사는 사람들은 적지 않게 ‘캘리포니아에서 왔다 돌아간 사람’의 기억을 갖고 있다. 지진이 나거나, 불황이 닥쳤을 때 새 인생을 개척하겠다며 태평양 연안 북단까지 올라온 도전자들은 아무때나 내리는 비에 갇혀 의욕을 상실했다.

그리곤 일 년 내내 푸른 하늘 아래 태양이 작열하는 고향을 그리다 못해 대부분 다시 짐을 쌌다.

하지만 시애틀의 비는 퍼붓는 비가 아니다. 많은 날 이 도시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옷을 적시는 가랑비다.

시애틀 주민은 거의 우산을 쓰지 않는다. 대신 방수 점퍼를 누구나 갖고있다. 좀 오래 밖에 나가 있을 작정이면 후드를 쓰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간다. 비를 맞으며 조깅하고, 비속에서 산책을 하며, 비 내리는 창가에서 커피를 음미한다. 시애틀은 한때 책이 가장 많이 팔리고, 영화를 가장 많이 보며, 선글라스가 가장 많이 팔리는 도시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런 전통은 매년 열리는 시애틀 국제영화제로 이어지고 있다.


또 영화사들은 시애틀과 뉴욕에서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를 처음 개봉하며 흥행 가능성과 작품평가를 가름하기도 한다.

시애틀 사람들이 책과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비와 관련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럼 선글라스는? 맑게 갠날 햇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다. 비가 걷히고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서북미의 태양은 자외선을 듬뿍 내려 붓는다.

시애틀 다운타운은 바다 옆에 세워졌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호수 같이 착한 바다다. 태평양에서 흘러와 거대한 베이를 형성하고 운하를 타고 시애틀 안까지 들어선 후에는 호수까지 이어진다. 그 바다 위에서 여기저기로 자동차를 실은 페리가 분주히 오간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다운타운 한복판 해변에서 있다. 온갖 생선을 팔고, 고기를 팔고, 갖가지 채소와 과일을 팔며, 거기에 별의별 공예품과 향신료까지 파는 진짜 시장이다.

세련되고 깔끔한 도시의 중심에서 대형 시장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장을 탐색하는 시간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쉽게 맛보기 힘든 경험이다.

지난 1907년 문을 연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현재 미국 전체에서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운영되는 시장으로 가장 오래된 곳 중의 하나다. 매년 이 시장을 찾는 인파만 무려 1,000만명에 달한다. 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의 순위로 세계에서 33위에 오를 만큼 시애틀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장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는다. 여전히 비린내 나는 생선을 팔고,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가 잔뜩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저녁식사 찬거리를 마련하고 계절 꽃 한꾸러미를 안고 귀가한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 보여주는 명장면이 있다. 모든 생선가게 앞에는 건장한 점원이 몇 명씩 복도로 나와 서성인다.

지나던 행인이 가령 연어 한 마리를 고르면 이들은 이내 ‘연어 한 마리요!’하며 큰 함성을 지르고 3피트는 족히 돼 보이는 큰 연어를 가게 안쪽 멀리로 날려버린다.

가게 안에서는 다른 직원이 익숙하게 생선을 받아 손질에 들어간다. 다듬어진 생선은 포장지에 쌓여 다시 탄도 미사일처럼 날아 진열대로 되돌아온다. ‘연어 갑니다!’ 고함소리가 뒤따르는 건 물론이다. 이쯤에서 웃지않을 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손님이 뜸하다 싶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장정들은 괜히 소리를 지르며 생선을 집어 들어 안쪽으로 던져버린다.

얼마 안 가 웃음소리가 터지고 큼지막한 물고기 한 마리가 다시 진열대로 날아든다. 이러다 보면 십중팔구 옆가게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연달아 큼지막한 물고기가 공중에서 곡예를 벌이고 서로 외치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갑자기 고함이 들려오고 생선을 냅다 던지는 모습을 접한 이방인은 순간 질려버린다. 그러다 금세 빙그레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다. 정겹고 힘차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위한 팬 서비스의 하나이자 고객을 부르는 쇼맨십이지만, 사람들은 흥겨운 시애틀 장터의 정취에 젖어 든다.

이만희 감독이 1966년 연출한 영화 ‘만추’를 리메이크한 2010년도 ‘만추’는 시애틀이 배경이다. 쌀쌀한 밤공기에 코트 깃을 한껏 올린 주인공현빈과 탕웨이는 바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지하층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1층에 생선가게와 채소가게 그리고 꽃집 등이 몰려 있고 2층에는 식당과 커피샵, 선물가게 등이 있다.

하지만 지하층에는 오밀조밀한 공예품과 각국에서 들여온 차와 허브 등을 파는 가게가 들어 차 있다. 정작 현실의 사랑은 현빈이 아닌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 사이에서 꽃 피워 결혼까지 골인했지만, 어쨌든 시애틀의 달콤하고 품위 넘치는 시장이 단단히 한몫 한 건 틀림없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장의 기능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와 진료시설 등이 들어서 있고 푸드뱅크도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또 저렴한 비용으로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차일드케어 센터도 운영되고 있다.

한 블락만 가면 원래 주인들이 운영하던 오리지널 스타벅스 가게가 있고 시장 도처에 길거리 연주를 벌이는 버스킹 아티스트들이 넘친다.

1907년 지은 시애틀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무어 디어터, 시애틀이 자랑하는 수족관 아콰리엄, 기가 막힌 베이 풍경을 한가롭게 즐길 수 있는 빅터스타인브렉 공원이 모두 아주 가깝다.

시장 주변에는 당연히 맛집이 즐비하다. 저녁노을이 지면 벽돌집 골목사이에 조그만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불을 켜고 손님을 맞는다. 어디를 들어가든 시푸드를 선택하는 게 근사한 디너를 즐길 수 있는 팁이다.

신선한 생선과 어패류가 넘치는 시장이 바로 옆에 있는 덕분에 언제나 해물요리는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글= 유정원 객원기자 / 사진= Wikipedi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