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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노후복지, 불자 지혜필요

2019-07-18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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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중반, 30대 후반 두 스님이 ‘미국포교 30년결사’ 원력을 안고 미국땅을 밟는다. A 스님은 동부에서, B 스님은 서부에서 전법활동을 시작한다. 두 스님이 머무는 사찰의 신도회(이사회)는 스님에 대한 처우를 놓고 거의 비슷한 안을 내놓는다. 훗날을 생각해 스님의 생활비를 월급 형식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두 스님 모두 처음에는 수행자가 무슨 월급이냐고 손사래를 쳤다. 신도들의 거듭된 설명과 부탁에도 A 스님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B 스님은 몇 달 지나 고집을 꺾었다. 나아가 사찰 경상비 중 일부를 포함시켜 명목상 월급을 높이자는 신도회의 권유까지 수용했다.

#2) 같은 또래 두 스님의 다른 선택을 불자들은 어떻게 볼까. 대체로 A 스님에게는 ‘무소유’를 실천하고 ‘지금 여기에서’에 충실한 수행자답다는 등 호평이 우세하지 않을까. B 스님에게는 그 반대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까.


미주한인 불교계에서 있을 법한 상황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은퇴기 두 스님의 처지는 천양지차다. 세금보고 실적이 없는 A 스님은 연금혜택을 못받아 생계유지조차 힘겨운 반면, B 스님은 충분치는 않지만 최소한의 생계비를 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어 운신이 그만큼 자유롭다. ‘대책있는’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제도와 ‘대책없는’ 한국불교의 노후복지제도 사이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슬기롭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세속법에 더 밝은 신도들이 스님의 보다 안정적 노후를 위해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 스님은 30년 넘게 전법활동을 하다 70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젊은 시절 A 스님과 같은 선택을 한 탓에 미국의 연금혜택도 종단의 복지혜택도 받지 못한 채 신도들이 틈틈이 모은 소정의 전별금과 상좌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B 스님과 같은 선택을 한 스님(시민권자)은 한국에서도 매달 미국 사회보장국에서 보내주는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스님들의 노후복지는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단의 최대숙제 중 하나다. 국내외 포함해 1만1천여명 내지 1만2천명으로 추산되는 조계종 스님들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몇 년 안에 25%, 30%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도 노후복지제도는 걸음마 단계다. 노후복지 개념조차 생소했던 1970년대 초에 자체적으로 연금제를 도입하는 등 미래의 노사제들을 위한 복지제도에 힘썼던 가톨릭계에 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범불교계인 원불교나 천태종에 비해서도 뒤떨어졌다. 조계종이 국민연금제와 별도로 승려연금제, 종단차원 의료비 지급 등 유의미한 복지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안된다. 지난해 9월 총무원장 선거 후보토론회의 주요쟁점 중 하나가 승려복지 강화였고, 지난해 12월 종단 주관 승려복지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종단 자체 연금제 도입이 늦어진 까닭에 이미 오륙십대가 된 스님들은 당장 가입해 최대한 불입한다 해도 만기수령액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1인당 연간 1,500만원까지로 돼 있는 병원비 등 다른 복지혜택도 연례 안거결재 보고와 같은 소정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장기 해외체류 스님들에겐 그나마 그림의 떡인 셈이다.

조계종의 불완전한 복지대책은 스님들의 노후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에 65세 이상 조계종 스님 1,8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구스님의 67.8%, 비구니스님의 65.2%가 “노후대책이 없다”고 답했고, 조사대상자 중 76.1%가 노후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했다. 일반인들의 노후불안 통계를 뛰어넘는 수치다. 비구스님 비구니스님 구분없이 불안요소 중 1위는 건강이었고, 빈곤이 각각 탑3 안에 든 것으로 집계됐다.

종단의 여러 중책을 맡았던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주지 광전 스님은 “가톨릭이나 천태종, 원불교의 경우 중앙집권제로 인사와 재정에 관한 권한을 (중앙이) 갖고 있어서 통합된 복지제도를 시행할 수 있지만, 조계종은 사실상 교구별 독립채산체여서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이어 “미얀마 같은 남방불교국에서는 의식주는 물론 대중교통 무료이용 등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스님들을 서포트하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다”고 덧붙였다.

광전 스님 지적대로 조계종 스님들에 대한 노후복지는 교구별로 사찰별로 천차만별이다. 고창 선운사는 원로스님들을 위한 노후수행마을을 따로 조성하는 등 자체적으로 탄탄한 복지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나 중소규모 사찰들은 사찰유지에도 벅차 복지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북가주를 비롯한 해외 한인사찰들의 재정사정은 더욱 열악해 노후복지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이런 경우 가장 지혜롭고 현실적인 대비책 중 하나가 바로 #1의 B 스님 케이스다.

<정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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