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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2019-07-03 (수)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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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제이히든하우스


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제이히든하우스


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미쁜 제과의 정원


반나절 힐링여행… 나는 한옥카페로 갑니다

문호리 하우스 베이커리


지하철 1호선 동대문 10번 출구에서 나오면 폭 3m가 채 안되는 골목이 나타납니다. 골목 안으로 20m를 걸어 들어가면 외벽 안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24시간 잠들지 않은 가장 번화한 동대문의 한 가운데, 주변은 북적대는 시장과 탕, 찌개, 구이 등을 파는 그야말로 밥집과 선술집 등이 즐비해 있는 그 곳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한옥이 그 주인공입니다.

제이히든하우스(J.Hidden House). 1915년에 지어져 100년 넘게 한국 전쟁을 지켜낸 서울 사대문 안에 유일하게 한 집안이 5대째 보유한 한옥이 얼마 전 ‘한옥 카페’라는 옷을 입고 대중에게 처음 개방됐습니다. 제이히든하우스에 들어서면 바람도, 시간도 모두 멈춘 듯 합니다. 이 곳에서는 잠시 가쁜 숨을 내려놓고 쫓기는 일상도 산적한 업무도 잠시나마 잊게 됩니다. 바람 부는 날 툇마루에 앉아 듣는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 풍경종 소리, 잔잔한 음악에 취해 잠시 191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합니다. 카페는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대표의 감각을 반영해 여백의 미를 강조한 미니멀리즘으로 큐레이팅 됐습니다. 거울이 있는 정원에서는 젊은 일본 여성들이 인증샷에 푹 빠져 있고 대나무와 육각 데크 벤치로 꾸며진 작은 정원에 앉아 핸드앤몰트 크래프트 비어를 마시며 서로의 추억을 쌓는 젊은 커플의 모습도 보입니다.

카페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며 스토리가 있는 카페를 방문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카페 데스티네이션(cafe destination)’이 요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소였던 곳이 목적지 혹은 도착지가 된 것이지요. 카페는 이제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 드는 특별한 경험과 힐링을 주는 곳을 찾아 사람들은 이제 카페 여행을 떠납니다. 공간이 주는 유니크한 경험을 찾아 일부러 찾아가고 기다립니다. 잠시 들렸다 가는 곳이 아닌 카페를 목적지로 하는 카페 데스티네이션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 경험하고 힐링하며 이를 또 다시 사진에 담아 SNS 인증샷에 올리는 것을 즐기는 젊은 층에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한 주의 한복판을 지나는 26일 오전 제이히든하우스를 찾은 김준(44)씨는 “바쁜 일상에 멀리 여행을 못 가더라도 하루의 반나절만으로도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 드는 카페를 찾아 마음의 여유를 갖고 특별한 경험을 가지려고 왔다”고 귀띔했습니다.


특히 최근 이런 ‘카페 데스티네이션’ 트렌드에서 인싸들에게 각광 받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테마는 ‘한옥’입니다. 레트로, 뉴트로 열풍이 계속되면서 공간도 이 같은 색깔을 입은 고풍스러운 곳이 밀레니얼 세대의 눈길을 끌고 있는 거죠. 전성은 제이히든하우스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는 유니크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한편 기성 세대에게는 편안하고 익숙한 것이 바로 한옥으로 최근 불고 있는 뉴트로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며 “밀레니얼 세대는 물론 일본인, 홍콩, 대만과 미국과 프랑스 관광객이 제이히든하우스 방문을 목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고즈넉함, 평온한 자연과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든 선대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한옥의 매력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크게 어필하고 있는 거죠.

지난 3월 유채꽃이 그리워 오랜만에 제주도를 찾았다가 대정읍 신도리의 제주도 베이커리 하우스 ‘미쁜 제과’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모슬포항을 지나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너무 뜬금없는 장소에 상당한 크기의 한옥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 들어갔더니 보기만 해도 모두 쓸어담고 싶은 화려한 빵들로 가득 찬 베이커리 하우스였지요. 미쁜 제과의 빵은 프랑스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해 3~7일 동안 자연숙성한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빵과 달리 소화가 잘 된다고 파티쉐가 귀띔했습니다. 안 그래도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나는 ‘마약빵’ 부터 수제로 만든 색색깔의 ‘요거트 머랭쿠키’, 토끼 모양의 귀가 달린 ‘래빗 케이크’ 등 모두 먹어도 괜찮다는 것처럼 들리며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시럽과 설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건강한 제주의 맛을 느끼는 감귤주스는 이 카페의 백미입니다.

베이커리 맛에만 빠져 있던 저는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이 카페 안쪽의 어딘가로 계속 사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빛이 스며드는 곳으로 나가자 확 트인 정원과 또 다른 숨겨진 한옥들, 춘향이와 이도령이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줄이 길게 늘어진 고전적인 그네, 널뛰기 등이 나타났습니다. 정원 한 켠에는 나무로 제작된 조형물은 물론 작은 다리(bridge)와 정자도 보입니다. 다리에 여기서 보이는 돌담 넘어 제주의 바다와 좀 전 돌하르방이 있던 카페 입구에서 보았던 바다의 느낌은 참으로 달랐습니다. 사진기를 들이대는 곳마다 그림엽서가 되니 인증샷 찍기 좋은 관광명소임에 틀림없습니다.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미쁜 제과의 정원이 눈에 아른거려 지난 5월 또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제주도’가 아닌 ‘미쁜 제과’가 목적지였습니다.

서울 근교 나들이를 목적으로 카페에 가는 일도 생겼습니다. 문호리 ‘하우스 베이커리’는 배우 이영애씨 집을 개조해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이미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서종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갈수록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여러 채의 한옥 건물로 이뤄져 있고 한 건물은 아예 아이들의 발길을 원치 않는 ‘노키즈존’으로 돼 있더군요. 단독룸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사전에 예약을 하면 가족끼리 놀러가 하루를 보낼 수 있도 있습니다. 워낙 크고 한옥이 여러 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북적이는 느낌이 없이 산 속에 온 듯 합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킥보드나 다른 탈 것을 준비해 너른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안 막히면 40분이면 닿는 서종에 비 오는 평일 날 훌쩍 떠나볼까 합니다. 한옥 마루에서 마주한 갓 구운 빵과 향긋한 커피, 뭐니뭐니해도 한옥의 향기가 어우러져 홀로 카페놀이로 나 자신과 교감하는 시간을 기대해 봅니다.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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