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기도문’ 문구 수정 둘러싼 교계 갑론을박

2019-06-26 (수)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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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 us not into temptation’ → ‘Do not let us fall into temptation’

▶ “환영”-“옳지 않다” 찬반 속 일부선 수용

주기도문은 기독교인이라면 가톨릭 구교 신자나 기독교 개신교 신자를 막론하고 잠결에서조차 자동으로 튀어 나올 만큼 누구나 줄줄이 암송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도문이다. 이 주기도문을 놓고 최근 교계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교황이 주기도문의 일부 문구 수정을 승인한 것이 발단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계는 신자나 전문가나 모두 각자의 소신에 따라 서로 옳고 그름을 저울질 하고 있다.

주기도문이란?

영어로는 ‘Lord’s Prayer’ 또는 ‘Our Father’라고도 하는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12제자들에게 기도의 본보기로 가르쳐 준 것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까지 실려 있으며 기독교에서는 기도의 가장 모범적인 방법이자 기본적인 틀로 여긴다.


개신교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란 의미로 ‘주기도문’, 동방정교회와 성공회는 ‘주의 기도’라고 부른다. 가톨릭은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지만 1960년대 후반까지, 성공회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천주경’이라고 불렀다.

신약성경 원문은 그리스어로 작성돼 있으며 가톨릭 문구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괄호는 개신교 문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등의 주요 부분은 오역의 논란이 자주 제기돼 왔다.

어디를 어떻게 고쳤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공식적으로 수정을 승인한 주기도문의 주요 문구는 마태복음 6장13절로 가톨릭 표현으로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란 구절이다. 개신교에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개역한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개역개정)’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KJV 흠정역)’ 등으로 번역돼 있다.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말일성도)는 개역개정판 버전의 주기도문을 주로 사용한다.

영어로는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지 말아달라는 ‘Lead us not into temptation’이었지만 이번에 교황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Do not let us fall into temptation’으로 바꾼 것이다. 이번논쟁은 ‘이끈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Lead’를 누구의 시각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핵심이다.

왜 수정해야 했나?

교황은 과거에도 기도문 문구 수정 필요성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을 유혹에 빠지도록 이끄는(Lead) 존재는 신이 아니라 사탄(악마)인데 기존의 문구는 마치 인간이 유혹에 빠지도록 신이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강해 번역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단어를 새롭게 대체함으로써 신이 아닌 사탄을 ‘유혹자’로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번 기도문 문구 수정은 16년의 연구와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탈리아 주교회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어 전례서 기도문을 우선 수정한 것이다.


교계 반응은 극과 극

기도문 문구 수정 승인이 최근 발표된 직후 소셜 미디어에는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갑론을박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진작 수정됐어야 한다며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교황이 가톨릭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는 보수파들의 목소리도 거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기도문을 교황이 맘대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유혹에 이끌리거나 빠져드는 문제가 아니라 ‘유혹(Temptation)’이란 단어의 해석을 더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순한 ‘유혹’보다는 고난과 핍박을 상징하기 때문에 개신교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주기도문에서 ‘유혹’이 아닌 ‘시험’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란 주장이다.

댈러스 신학대학원의 마크 베일리 학장은 신이 직접 인간을 유혹으로 이끈다는 해석보다는 죄에서 멀어지도록 기도로 간구할 필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며 교황청의 결정을 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가하면 프랑스는 지난해 수정을 마친 문구를 이미 사용 중이고 서반아어를 사용하는 대다수 국가들도 수정될 문구를 사용한다. 반면 독일은 교황의 해석에 반감을 표하면서 기존 문구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고 영어권에서도 아직은 ‘이끈다’는 의미의 ‘Lead’란 표현을 넣은 주기도문을 사용 중이다. 영어권 미사 전례 및 기도문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11개 영어권 교구 주교 협의체가 공동 번역하고 있으며 영어권 기도문구까지 수정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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