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남아 선교 여행은 갑작스럽게 계획되고 실시된 셈이다. 애초에 시작은 한국에 치아치료를 위해, 비행기 요금이 저렴한 비수기를 이용해 2주정도 다녀올 계획으로 아내와 한국행 표를 샀다. 전체적으로 치아 치료에 두사람에게 드는 비용이,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적어 여행비를 빼고도 남을 정도였다.
마침 치과 의사를 하며 선교하는 K선교사가 치료비를 디스카운트 해주어, 여분은 선교비로 드릴수도 있었다. 기도 하는 가운데, 여기까지 온김에 그 동안 못한 동남아 선교지를 한번 둘러 보고 싶은 거룩한 욕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월남,캄보디아, 타일랜드를 다녀오기로 하고 여기저기 비교해 본후 가장 낮은 가격으로 왕복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월남에서 마침 베이지역과 라스베가스에서 목회하다, 동남아 선교의 꿈을 가지고 월남에서 “톳놋선교회”를 이끄는 50대 초반의 C선교사님과 컨택이 되었다. 호치민 공항에 밤늦게 도착했는데도 공항은 초만원을 이뤄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으며 겨우 마중 나온 C선교사를 만날수 있었다.
선교사는 시내에서 작은 한인교회를 하는데, 교인들은 대개 한국에서 온 회사 주재원 부인이라 한다. 남편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근무하기에 한달에 한번 정도 다녀간다고 한다.
다음날 중형밴을 대절하여 교인들과 함께 3시간을 운전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선교현장인 섬마을에 도착했다. . 사람들을 만나 보았는데, 놀란것은 사가지고 간 볼펜 큰 박스와 옷을 가지고, 공산당 간부 청사로 가서 그들에게 전달하고 간부 대표들의 초대로 그 지역 유일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 식당은 마을에서 가장 큰 절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절은 엄청난 불상과 그림조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보였고, 교회 십자가는 거의 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우선 공산당원들과 친해져서, 종교국 지도자의 배려로 종교활동 허가를 얻는 일이 다음 단계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선교 대상은 각곳에서 한국에 국제 결혼으로 나갔다 실패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자들이 많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있었다. 국가적으로 월남은 도시를 중심으로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빌딩과 거리마다 가득찬 승용차와 오토바이 물결은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간단히 그들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민성의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말인 111년 한나라에 복속됐지만 그후 1000년간 독립투쟁을 벌여 기원후 939년 박단강전투에서 승리해서 독립국이 되었다. 그후 프랑스를 전투에서 몰아내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결국 승리로 끝맺는다.
1986년 ‘도이모이’라는 개혁정책을 펴기시작, 외국의 투자를 허용하는 자유주의 정책을 허용, 2000년 이후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걸맞는 기독교 선교 정책과 기독교의 도착화가 시행되어야 할것 같았다.
다음날에는 캄보디아 L목사님 내외분의 안내로 선교 현황과 도시와 시골을 둘러보았다. 특히 가슴 아픈 역사-크메르 루즈 집권기 동안 최소한 150만명의 캄보디아인들이 피살된 킬링필드와 그 박물관을 보면서 같은 동족의 지도자로 부터 그렇게 무참하게 학살당할수 있나하는 의구심이 나기도 했다. 그가 농촌에서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일원이었다니, 공산주의 잔학성을 다시 뼈저리게 절감할수 있었다. L목사님 내외분은 한국의 일반 직장에서 은퇴 후 제2 커리어로 선교사의 소명을 받고 3년째 선교를 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다고 했다. 실버미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있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생활비가 한국의 반밖에 안되고 , 기후도 좋은 편이라 500명 정도의 선교사들이 있다고 했다. 프놈펜시 극빈지역에 물위에 떠있는 판자촌을 중심으로 방한칸을 얻어 예배당을 만들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주일날엔 1시간 거리의 시골로 가서 새로 건축된 예배당을 중심으로 아이들중심(어른 두세명)으로 예배를 드리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2000년 동안 인도와 중국의 문명을 받아드리고 그것을 동남아로 전파하는 역활을 하는 동안 캄보디아는 1~8세기 푸난과 첸라의 힌두교-불교 왕조의 영향이 커, 거의 집집마다 입구에 작은 불교 사당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시골 도시 할것 없이 불교사원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12세기 왕조의 전성시대를 이루어 앙코르 와트, 바욘, 앙코르톰 등 거대한 석조 사원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타일랜드도 불교의 사원들이 도시나 시골 어디든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너무나 짧은 기간에 ‘버드스아이’ 로 본것이지만, 기독교 선교가 제대로 꽃을 피우기 위해선, 수십년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 라는 말씀이 동남아에도 하루 속히 실천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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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 행복연구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