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물에 데치듯 담그면, 보관 기간 50%까지 늘어, 물기 걷은 후 냉장 보관
▶ 잼보다 덜 졸인‘콤포트’를, 케이크 위에 놓고 크림 얹어, 켜켜이 쌓으면 상큼달달 디저트
딸기는 카스텔라나 스펀지케이크 등과 곁들이면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약불에 졸여 먹는‘딸기 콤포트’는 과육이 단단하고 신맛이 강한 미국산을 사용하는 게 좋다.
개당 1,300원인 죽향. 꿀같이 달지만 적당한 신맛이 단맛을 받쳐 준다. <이용재 제공>
“철이 막바지를 맞이하여 딸기가 무르오니 한 번에 드실 만큼만 사서 바로 드시기 바랍니다.” 매대의 의외로 솔직한 문구를 보고 슬퍼졌다. 벌써 딸기 철이 끝나간단 말인가. 슬퍼할 만한 사연이 있다. 축제도 벌어지는 딸기의 고장 충남 논산시에는 육군훈련소가 있다. 거기로 배치를 받은 게 하필 4월 중순, 딱 이맘때였다. 일단 훈련소 내부에서만 열흘 정도 교육을 받은 뒤에 외부의 교육장으로 나가 심화 훈련을 하는데, 편도 한 시간은 걸었을, 멀고 먼 훈련소 일대가 온통 딸기밭이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딸기였지만 상황이 그렇다 보니 먹고 싶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대개 스트레스 속에서 훈련병은 초코파이나 모나카 등 단 음식을 찾는다는 게 정설이었건만, 나는 그 무엇보다 딸기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훈련소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군침을 삼키며 꿈만 꿀뿐이었다. 6주의 훈련을 마치고 나니 5월 말, 운 좋게 특박을 받아 나와서는 눈에 뜨이는 과일 가게마다 물었지만 딸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충격으로 나는 딸기에 집착을 품게 되었고, 다니는 곳마다 눈에만 띄면 사서 먹는 인간으로 거듭났다. 가장 인상적인 딸기는 핀란드 헬싱키의 장터에서 산 것이었으며(시고 단단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올해 먹은 딸기 가운데는 개당 1,300원이었던 열 개 들이 죽향이 가장 맛있었다. 대체로 크기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지만 크고 밍밍한 딸기도 많고, 오히려 잘아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 똑 떨어지는 맛을 내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볕이 뜨거운 한여름만 빼고는 딸기를 사시삼철 정도 먹을 수 있으며 가격대도 다양하다. 원래 딸기의 제철은 5월 중순, 초여름이었지만 비닐하우스 덕분에 철을 다소 초월했다. 그럴 수 없었던 시절에는 한층 더 어렵고 서러웠다. 22년간 1,088회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화 가운데 둘을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한다. 첫 번째는 막내 금동이가(시장에서 혼자 있는 아이를 회장님이 데려 오는, 그의 등장 첫 회였다), 두 번째는 딸기가 주인공이었다. 때는 겨울 밤, 편찮은 동네 할머니가 딸기를 찾는다. 구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했지만, 설사 있더라도 엄청나게 비쌌고 아들은 돈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 돈을 보태주었건만, 아들은 들고 나가 도박으로 대부분을 날려 버리고 딸기잼 깡통을 사온다. 그리고는 ‘이게 더 맛있는 것’이라며 어머니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인다. 그 순간 일용이가 진짜 딸기를 가지고 들어왔으니, 아들은 불효자로 전락했다.
◇45℃ 물에 15초 담그면 더 오래 가장 사랑 받는 과일이자 식재료인 딸기에 대해 딱히 늘어 놓을 이야기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 여태껏 다뤄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 철이 끝나간다고 해서 정신이 좀 들었다. 송가라도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빨리 무르는 딸기를 조금이라도 더 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부터 살펴보는 게 예의이다. 딸기는 손으로 하나씩 따줘야만 하는 연약한 과일이라 오래 두고 먹기가 어렵다. 하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다는 개념으로 담가주면 보관 기간을 50%까지 늘릴 수 있다. ‘모더니스트 퀴진’을 비롯해 여러 창구에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제안하는 과채 손질 및 보존법으로, 딸기라면 섭씨 45도의 물에 15초 동안 담가 준다.
그렇다, 이게 끝일 정도로 간단하다. 45도라면 따로 끓이는 번거로움 없이 수돗물을 쓸 수 있으니 속는 셈 치고 한 번쯤 시험해보자. 나의 경우는 과채 세척제까지 함께 써서 딸기를 씻는다. 수돗물을 틀어 놓고 온도가 올라가는 동안 딸기를 체에 받쳐 세척제를 골고루 뿌려 두었다가 따뜻한 물에 15초 담갔다 건지는 것이다. 찬물로 마무리 삼아 한 번 더 헹군 뒤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둔다. 고작 15초짜리 과정을 거치면 딸기가 단단함을 잃지 않고 며칠 더 간다. 정석대로라면 딸기의 물기를 말끔히 걷어내고 보관해야 하지만, 번거로우므로 뚜껑을 덮지 않은 채로 냉장고에 서너 시간 두어 물기를 날린 다음에 덮어 보관한다.
◇제철 놓쳤다면 ‘냉동 딸기’ 한편 딸기의 철이 정말 막을 내렸다고 해서 세상을 잃은 양 슬퍼할 필요까지는 없다. 다시 돌아올 철까지 냉동 딸기가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웬만한 규모의 마트에서는 망고, 블루베리 등과 더불어 ‘스무디 과일’의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게 냉동 딸기이다.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해동시키면 곤죽이 되어 버리니 우아하고 아름다운 생딸기를 대체할 수는 없다. 비교가 아예 의미 없는 다른 식재료라 여기는 게 속 편하다. 대신 불에 익힌다거나 해서 딱히 모양을 살릴 이유가 없는 레시피에는 무리 없이 두루 쓸 수 있다. 게다가 미국산처럼 표정이 확연히 다른 제품도 있어 맛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가질 수 있다.
냉동 딸기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편리함이다. 꼭지를 예쁘게 발라내고 세척까지 마친 데다가, 대부분이 새우(본보 1월18일자)처럼 개별 냉동(IQF)시킨 제품인지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만 꺼내 쓸 수 있어 낭비가 적다. 다만 ‘스무디 과일’이라 일컬었듯 블렌더에 요거트, 얼음 등과 갈아 음료를 만들 때는 주의를 권한다. 꽁꽁 언 딸기는 얼음만큼이나 단단하므로 웬만한 블렌더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갈고자 시도할 경우 모터가 견디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아침 식사 등으로 스무디를 아주 열심히 먹을 결심이 섰다면 요즘 새롭게 지평을 형성한, 강력한 위력을 지닌 카페 등에서 쓰이는 고가의 블렌더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20만원대부터 시작하지만 광고에서 보여주듯 타이어나 스마트폰도 갈아내는 수준의 위력이라면 40만원대부터 찾는 게 좋다. 한편 투자할 필요를 못 느낄 만큼 드문드문, 생각 날 때마다 한 번씩 만들어 먹는 형편이라면 얼음은 그대로 갈되, 딸기는 냉장실로 옮겨 하룻밤 해동시켜 준비한다(전자레인지를 써도 좋다).
참고로 불에 익혀 먹을 딸기라면 단단하고 신맛이 꽉 들어찬 미국산이 더 낫다. 국산은 대체로 생식, 즉 생과일을 먹는 용도 위주로 품종이 개량되어 익히면 과육도 물크러지고 졸이면 생으로 먹을 때에는 나쁘지 않은 단맛이 압축되면서 인공적인 느낌(딸기맛 아이스크림 등에서 나는)이 치고 나온다. 반면 미국산 딸기는 애초에 단단해 끓여도 과육이 덜 뭉개지는데다가 설탕으로 단맛의 균형을 신맛과 적절히 잡아주면 표정이 한층 더 강렬해진다. 오래 끓이고 졸이는 잼까지 집에서 만드는 건 이제 무리라고 보지만(기성품을 사먹자. 요즘 정말 다양한 잼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설탕과 함께 잼의 중간 지점쯤에 이를 때까지 졸이는 콤포트라면 냉동 딸기로 시도해 볼만하다. 레시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숫자를 따라가지 않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냉동 딸기를 살짝 해동시킨 뒤 썰어 냄비에 담고 물과 레몬즙 약간, 그리고 원하는 만큼 설탕을 더해, 약불에서 30분 정도 졸인다. 잼보다 묽고 덜 끈적이며 과육도 살아 있는 콤포트는 아이스크림이나 치즈케이크 같은 디저트부터 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와플 등 브런치 메뉴에 두루 잘 어울리는 소스이다. 물론 이런저런 것 다 필요 없고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상관없고 또 맛있다.
◇디저트로도 무한 활용 콤포트를 끓였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가 요리 분위기를 풍기는 딸기 디저트도 시도해볼 수 있다. 작금의 대세는 생딸기를 최대한 많이 끼워 넣고 또 얹는 생크림 케이크이지만 최선이라 보지는 않는다. 생딸기의 맛과 질감이 더 인공적인 케이크나 크림과 어울리지 않고 겉돌기 때문이다. 집에서라면 더 간단하면서도 조화가 좋은 디저트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미 후추(본보 1월25일자)에서 살펴보았듯 딸기는 설탕에 절이기만 해도 생과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디저트가 된다. 한편, 조금 더 공을 들이고 싶다면 ‘트라이플(Trifle)’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기록이 15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트라이플은 설탕 등에 재운 과일과 스폰지 케이크, 거품기로 올린 크림이나 젤리 등을 켜켜이 담아 만드는 디저트로 ‘떠먹는 케이크’이다. 준비한 재료를 담는 것만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손이 많이 가지 않는데다가, 켜가 드러내는 아름다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어 노력 대비 결과가 가장 만족스러운 디저트이다.
다만 켜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높고 넓은 유리 그릇을 써야 한다는 게 정석인데, 굳이 살 필요는 없다. 자주 쓰지도 않을 큰 그릇의 관리도 번거롭지만, 다 채우면 최소 6인분 이상이므로 동네 잔치라도 벌이지 않는 한 다 먹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에서 평소에 쓰는 유리잔이나 컵에 1인분씩 채워 만들 것을 권한다. 일단 지금까지 살펴 본 두 종류의 딸기(재운 것과 콤포트)에 기성품 카스텔라나 스폰지케이크, 캔에 담겨 짜서 쓸 수 있는 크림을 준비한다. 번갈아 깔기만 하면 순서는 상관 없지만 케이크를 맨 바닥에 깔고 익힌 딸기, 크림 순으로 올리면 딸기의 즙이 케이크를 촉촉하게 적셔 줘 맛이 한층 더 잘 어우러진다. 컵이나 잔을 다 채울 때까지 세 재료의 켜를 번갈아 깔고 생크림으로 맨 위를 마무리한다. 맛이 완전히 어우러지도록 냉장고에 2~3시간 두었다 먹는다. 음주가 가능한 어른이라면 켜 사이사이에 럼, 그랑 마니에르(오렌지 리큐르)처럼 열대 및 과일향을 머금은 술을 조금씩 더하면 훨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딸기 꼭지 제대로 따려면 자르지 말고 심지 도려내야딸기 꼭지를 따내는 데도 요령이 있나? 손으로 밖에 수확할 수 없으며 금방 무르고 멍들어 버리는 섬세한 과일이라면 요령이 필요할 법도 하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딸기의 대다수가 살짝 덜 익어 꼭지가 하얀 상태이므로 색깔이 바뀌는 지점을 썰어버리는 손질이 일반적으로 통한다. 잘라낸 면이 평평하므로 뒤집어 접시에 담기도 편해 그럴싸하지만 심의 일부가 남아 있어 씹는 느낌이 유쾌하지 않다. 따라서 자르지 않고 발라내 주는 게 조금 더 정확한 손질법이다. 일단 잎을 손으로 당겨 떼어낸 뒤 볼록 솟아오른 흰 꼭지의 둘레를 과도의 끝으로, 원뿔 모양으로 도려낸다. 물론 예쁘게 생긴 딸기 꼭지 도려내는 전용 도구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다른 용도로는 쓸모가 전혀 없으니 딸기 철마다 삼시세끼를 꼭지 도려낸 딸기로 먹을 심산이 아니라면 굳이 살 필요는 없다. 다소 굵은 플라스틱 빨대를 꼭지부터 맨 끝까지 관통시켜 심을 발라내는 요령도 있다.
<
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