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술 마시는 것이 과연 죄인가?

2019-04-10 (수) 이정은 기자
크게 작게

▶ 전국 알콜 인식의 달…술과 종교의 관계 조명

▶ 가톨릭 60%·개신교인 51%, “지난 한달간 음주 경험”, 다양한 시각 논쟁 지속

봄이 완연한 4월은 음주의 위험성을 알리는‘전국 알콜 인식의 달’이다. 알콜중독 및 약물의존 전국위원회(NCADD)가 1987년 제정한 것으로 매년 4월 첫째 주말에는 72시간 금주운동도 펼쳐지며 올해는 5~7일이 해당된다. 술과 종교는 늘 붙어 다니는 논쟁거리다. 종교를 가진 자나 없는 자나 술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나름의 원칙과 주장이 팽팽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지 않은 주제다.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논쟁인 종교인과 술의 관계를 짚어본다.

■술에 관한 종교별 계율

불교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불교에 입문한 재가신도가 지켜야 할 5가지 수칙인 ‘오계’를 어기는 것으로 간주해 금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등은 포도주를 성찬예식으로만 사용하며 힌두교는 포도주를 고대부터 장수의약품으로 사용해왔다. 유대교는 포도주가 종교 의식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마시는 것도 일반적으로 허용하지만 만취는 금하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6세기부터 수도원에서 직접 맥주를 제조해 온 역사가 있고 벨기에 수도원에서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는 ‘시메이(Chimay)‘ 맥주는 명품으로 꼽힌다. 트라피스트 가톨릭 관상 수도회도 직접 맥주를 제조하고 포도주도 생산한다.

그런가하면 기독교는 사실상 하나로 일치된 의견이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축복의 상징인 동시에 악의 근원으로도 다뤄지고 있어 해석하기에 따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금주 운동은 19세기 중반 연합감리교와 복음주의자들의 주도로 시작된 산물이다.

이외 이슬람교는 금주가 기본이지만 이집트와 모로코의 맥주, 알제리의 포도주를 비롯해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명성 있는 양조 브랜드를 갖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밀주 생산량도 상당하다.

■종교인들의 음주율은?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매달 한 차례 이상 종교 의식에 참석하는 미국 성인의 51%가 지난 한 달간 술을 마신 적이 있다고 답했고 폭음을 했다는 비율도 13%였다. 매달 종교 의식에 참석하지 않는 성인 중에도 62%가 음주 사실을 고백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60%, 개신교인은 51%가 음주를 했고 폭음했다는 응답도 가톨릭 신자가 17%, 개신교인도 15%였다. 특정 종교가 없는 경우는 65%, 무신론자는 62%가 술을 마셨다고 답했다.

종교인이 술을 마시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개신교인은 16%, 가톨릭은 1%,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23%였으며 매달 종교 의식에 참석하는 종교인 중에서도 불과 22%만이 잘못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라이프웨이 리서치’가 이보다 앞서 발표한 유사 조사에서는 개신교 기독교인의 41%가 술을 마신다고 답해 10년 전 조사 때의 39%보다 3% 포인트 늘었다.

■음주는 과연 죄인가?

수천 년 역사의 기독교도 ‘술을 마시는 것이 과연 죄인가?’를 놓고 아직까지도 논쟁을 지속하고 있을 정도로 이 질문에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는 종교는 없다.

3년 전 급성장하던 미국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자주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해임됐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지난해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대형 미국교회가 예배당을 이전하면서 양조장을 함께 지어 예배도 보고 맥주도 제조 및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매월 한 차례씩 토요일 밤에 맥주를 마시는 찬양행사를 기획할 만큼 음주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신학적 근거로 공개했다.

성찬예식에서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까지 포도주스로 대체하는 보수적인 교회가 여전히 많지만 그만큼 성경 해석에 있어 개신교내에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함을 엿보게 하는 사례들이다.

술에 관해 성경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 ‘여호와를 공경하면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등 축복의 구절도 있지만 ‘술에 잠긴 자에게 재앙이 있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술 취하지 말라’ 등의 경고도 많아 극과극의 시각이 존재하지만 금주를 못 박지는 않는다.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가 금주의 상징처럼 된 것은 한국인의 지나친 음주문화를 접한 선교사들이 서민 대상 포교를 위해 이를 폐습으로 지적한 시대적 상황이 한몫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가톨릭 전파 당시에는 술을 담글 수 있던 유일한 계층인 양반을 위주로 확산됐기 때문에 음주가 자연스럽게 허용될 수 있었다는 것.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하마드도 원래는 술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술에 취해 망언을 하며 자신의 낙타를 죽인 것에 충격을 받아 술을 금하게 됐지만 이슬람 문학의 축을 이루는 주제 중 하나도 바로 술이다.

■죄 아니라도 자제할 이유

미국의 대표적인 온건파 보수개혁주의 목회자인 존 파이퍼 목사는 ‘디자이어링 갓’ 팟캐스트에서 ‘기독교인의 음주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죄일 수도, 죄가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파이퍼 목사는 옳고 그름으로 술 마시는 사람을 정죄하기보다는 음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성을 먼저 살피도록 경고하며 음주를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음이 약한 초신자들이 혼란스러워 하거나 그릇된 신앙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술 때문에 누군가는 사고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가정폭력과 이혼으로 가정이 무너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도 경고했다.

성경에도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으로 마음이 둔하여진다’고 하였다. 일반 평신도 종교인은 물론 교계 지도자들이 자기절제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은 굳이 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풍성한 마실거리를 주셨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이정은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