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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회계사 비밀의 무게

2019-03-04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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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어느 식당. 혼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은 칸막이 옆 테이블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들린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자기 손님들의 비밀스런 내용들을 거침없이 하고들 있었다. 전부 세금 얘기인 것을 보면, 어느 CPA 사무실 직원들인 듯하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서 잠시 나라를 비운 사이, 12년 지기 개인 변호사는 트럼프에 대한 나쁜 얘길 공개적으로 하고 있었다. 정치는 내 전문도 아니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다만, 다른 종류지만 같은 전문가로써 TV를 보는 내내, 나는 마음이 참 불편했다.

그동안 내가 굳게 믿어왔던, 그래서 한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그런 전문가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사기꾼, 협잡꾼’이라고 깎아내렸을 때, 당사자가 느꼈을 당혹감 - 그 기분이 어땠을까? 집에서 아들과 조용히 나눈 대화까지 공개증언을 해버렸으니, 당사자인 트럼프는 ‘과연 나는 앞으로 누굴 믿고 얘길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30년 전, 이제 막 회계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삼일회계법인의 서태식 회장이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회계사로서의 5가지 자세. 그 첫째가 전문가로서의 의심(professional skepticism).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고객의 말과 자료를 의심하고 내 계산도 의심하고, 내 최종 판단조차 의심하라.

두 번째는 비밀주의(confidentiality). 고객과 관련된 내용은 비록 그것이 좋은 자랑거리라도, 애인이나 친구에게, 또는 술 마시면서 절대로 안주삼지 말라. 고객과의 상담은 천주교 신부의 고해성사와 같다. 무덤까지 갖고 가라. 나는 그렇게 이해를 했다. 그리고 그 다짐과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게 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방송국 피디가 나를 인터뷰하러 온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의 미국 송금과 현지법인 설립, 뉴욕 부동산 취득 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2시간 가까이 나를 촬영했지만 실제로 방송된 부분은 1초도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 건질만한 내용이 1도 없었나 보다.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 4개의 얘기를 했다. 식당에서 떠든 CPA 사무실 직원들,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 선배 회계사의 충고. 그리고 통편집된 TV 인터뷰. 모두 다른 얘기지만,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 - 보고 들은 자의 비밀이다. 목을 비틀어도 남과 나눠서는 안 되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비밀이 있다. 내 몸무게 200 파운드 중에서 입술 무게만 100 파운드가 넘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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