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봉행된 길로이 대승사 임시법당 기공식 장면. 건축허가 등 행정절차 때문에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신원을 밝히지 않은 60대 처사가 상당액을 보시, 대승사 이전불사에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누가 말했다. 알마덴에 좋은 터가 나왔다고. 설두 스님은 달려갔다. 넓은 땅에 나무숲이 제법이었다. 따라간 몇몇 신도들도 나중에 전해들은 신도들도 다들 좋아했다. 꿈에 부풀었다. 이웃들 눈치에 관청의 시집살이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산타클라라 주택가에서 벗어난다는 것만 해도 날아갈 것 같았다. 잠시였다. 임자는 따로 있었다. 주인과의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팔려나갔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데 귀에 번쩍 새 정보가 잡혔다. 이스트 팔로알토 어디에 절을 하면 딱 좋을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스님 일행은 곧장 알아봤다. 주차장 겸 뒷마당이 꽤 넓은 2층짜리 건물이었다. 크게 손볼 곳도 없었다.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이 눈치 저 눈치 볼 이웃이 없으니 제격이라 생각했다. 인근 스탠포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장래성있는 전법활동’을 하기에도 안성마춤이라 여겨졌다. 그곳 또한 대승사 인연터는 되지 못했다.
이전불사 꿈마저 깨질 수는 없었다. 스님과 몇몇 신도들은 새 절이 될 만한 건물을 찾아 새 절을 지을 만한 터를 찾아 부지런히 귀동냥을 하고 발품을 팔았다. 그런 끝에 건진 곳이 길로이 절터다. 재작년 8월에 평평한 풀밭 5에이커를 샀고 작년 1월에는 그 풀밭에 붙은 8에이커 마늘밭까지 샀다. 하여 13에이커가 됐다. 작년 2월, 그곳에서 임시법당 기공식을 봉행했다. 임시법당은 4월 개원 예정이었다.
이번엔 관청이 발목을 잡았다. 건축허가 이전에 거쳐야 하는 다단계 행정절차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산타클라라 대승사 매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작년말 매각완료). 붕 뜨게 된 대승사는 작년 가을에 길로이 새부지 근처 하우스를 임시법당 겸 스님거처로 임대했다.
옛 절은 팔렸는데 새 절은 아득하고… 더러는 조바심을 냈다. 더러는 군소리를 했다. 대승사의 본사인 해남 대흥사에 있을 때부터 ‘타고난 일꾼’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 설두 스님은 좀이 쑤셨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참선과 기도뿐이었다. 지극정성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몇 주 전이다. 참선삼매 중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스님의 손에 뭔가 쥐어주고 사라졌다 한다. 며칠 지났을까. 평일 오후 서너시쯤 대승사 임시법당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삼배를 올렸다. 스님은 삼배로 맞았다. 손님은 차를 청했다. 스님은 차를 내었다. 어디서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속명도 법명도 말하지 않고 불자라고만 밝힌 손님은 “차 맛이 참 좋습니다, 잘 마셨으니 차 공양비를 올려야겠습니다”라며 자동차에 다녀와 봉투를 내밀었다.
“스님께서 불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문보다 참 부드러우시네요.”
“아니 제가 어떻게 소문이 났길래…” 스님의 농반진반 대꾸에 손님은 말했다. 그리고 떠났다.
“용돈이라 생각하시고 원하시는 곳에 마음대로 쓰십시오. 어디에 어떻게 쓰시는지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차를 참 잘 마셨습니다.”
봉투에는 꽤 큰 돈이 들었다. 그 다음주 어느 날, 그 처사가 또 찾아왔다. 함께 차를 마셨다. 역시 말은 없었다. 그는 떠났다. 봉투가 남았다. 스님과 60대 처사의 평일 낮 차 만남은 그 다음주에도 있었다. 세차례 보시금은 실리콘밸리의 웬만한 IT회사 대졸초임연봉에 맞먹는 금액이라 한다.
소문을 듣고 주변취재를 한 뒤 전화를 건 기자에게 설두 스님은 특유의 남도 억양으로 말끝을 흐리며 말미를 돌렸다. “아니~, 그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으시니까~, 그나저나 정~말 고맙지요, 정말~!”
<
정태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