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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칼럼 無盡燈(무진등)] 메리 고 라운드

2019-02-06 (수)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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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매화가 작년보다 일찍 폈다. 연꽃 연못에 살얼음 얼리던 큰 추위도 없었다. 폭풍은 여전했지만 비는 작년보다 좀 적은 듯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작년 1월과 크게 다르진 않다. 작년 1월이나 재작년 1월이나 올 1월이나 비교해보면, 모든 상황이 거의 같다. 이 중은 해 지난 달력을 항상 책상 앞에 두고, 오늘의 일지와 비교하며 본다.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누가 왔었구나, 소풍가기엔 좀 일렀구나 등을 보고, 이때쯤 수선화 밭에 가면 되겠다, 요맘때 나무를 심어야겠다, 올해의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러면서 때마다 새삼 놀라며 느끼는 게 있다. 사람을 비롯해서 세상 만물은 항상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잎 피고 지고 다시 피며, 작년에 스키장에 간 이는 올해도 거기 있고, 작년의 그 리포터는 올해도 같은 자리에 서서, 마치 처음처럼 해피뉴이어를 외치고, 티브이에서는 똑같은 시상식이 열리고, 플레이오프 경기의 풋볼은 다시 날아오른다. 그래서 새롭게 일지를 기록하다가도 문득, 데자뷰에 걸려들어, 오래 현실 감각을 상실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올해도 새해가 됐다고, 새 일을 하자고, 뭔가 큰일이라도 난 듯, 푹죽을 쏘아대고 카드를 날려보내고 하지만, 그 역시 지난해에 똑같이 했던 일이다. 결국 우리는 삶의 그 반복성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늘 여기, 제자리에서 반복할 뿐이다. 인생을 아주 조금만 관조해보면, 자신이 어딘가에 걸려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벗어나고 싶어도 불가항력처럼 느껴지는 그 굴레. 이 인생의 축이 도대체 어디에 걸려 있기에 이렇게 회전목마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쉬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인지, 그리고 한걸음 나아가 여기서 내릴 수는 없는 것인지를. 삶에 대한 진정한 물음에서 불교는 시작된다.


그 한 번을 묻지도 못하고 올해가 왔는갑다, 내일이 오나보다, 미래가 저기 있겠지, 요것만 끝나면 하리라, 하면서, 오늘보다 내일을 더 사는 이들에겐, 영원히 먼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지 않다.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고, 미래로 가는 것도 아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 저 <중론> 에 나오듯, '이미 가버린 것에는 가는 것이 없고, 아직 가지 않은 것에도 가는 것이 없으며, 지금 가고 있는 중인 것에도 가는 것은 없다.' 그저 생의 바퀴는 반복일 뿐이다.

그렇다면 !!! 어차피 오르락 해도 그 자리요, 내리락 해도 그 자리요, 가도 가도 그 자리라면. 지금 현재 서있는 그 자리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때로 높은 자리에 처할 때도 있고 대열에서 가장 낮은 바닥을 칠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엄청난 도력이 없이는 그 순환을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돌고 돈다. 어제 잤던 잠을 다시 자고, 다시 일어나고, 씻고, 자동차 시동을 다시 켜고 있다. 저 메리고라운드 처럼. 슬픈 업의 굴레요, 사람에 따라선 놀이동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하고 속력을 내며 달리는 듯 보여도, 결국은 돌고 도는 것이다.

세상은 당신을 늘 제자리에 돌려 놓을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며 일상을 반복할 것이다. 어딘가 걸려 있다는 의식도 없이. 끊고서 벗어나야겠단 의지도 없이. 세상의 권력이 원하는 대로.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모르지만, 그 세상의 속도에서 내려도 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세류를 떠나 어떻게 사냐고? 그것이 늘 문제다. 해보지도 않고, '그러면 안될 거 같은'걸 믿기 때문에, 초월이 어렵다.

돌고 돌아 먼 후일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어서, 당신의 삶은 오늘도 빠르게 달린다. 어디로? 올해는 많은 불자들이 때로 멈추고 물어서, 자유로운 삶에 대한, 궁극의 해답을 얻기를 감히 빌어본다.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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