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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같은 고객, 다른 전문가

1969-12-31 (수)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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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사격 훈련장의 군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날 아침, 우리 20명의 CPA장교 훈련생들은 숨을 죽이고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드디어 첫 교관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런데 말끝마다 '공인중개사'였다.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공인중개사라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결국 사고가 터졌다. 총기사고가 아니라, 웃음사고다. 뒤쪽에 서있던 동기 하나가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날 우리는 가장 혹독한 PRI 훈련과 PT 체조를 이겨내야만 했다. 그 친구 욕을 엄청 하면서.

공인중개사는 공인회계사와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들 혼동한다. 세무사와 회계사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회계사(CPA)를 합격하면, 세무사 자격증을 자동으로 줬다. 그래서 나도 갖고는 있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자격증이다. 변호사와 세무사/회계사, 보험과 부동산, 은행과 카드. 모두 같은 고객들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전문분야는 각자 다르다. 그들의 역할은 각자의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고객은 세무(tax)와 회계(accounting)라는 내 전문 영역을 넘는 질문과 요구를 해올 때가 있다. 그 사정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의 초기에는 찜찜하지만, 남의 전문 영역까지 넘어가게 된다.

사례 하나를 같이 보자. 최근 뉴저지에 Equal Pay Act 라는 노동법이 생겼다. 예를 들어서, 아담과 이브는 입사 동기다. 하는 일은 같은데(substantially similar), 이브는 아담보다 주급이 적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담에게 물었다. 너 얼마 받니? 아담은 이브가 주는 사과만 달랑 받아먹고는, 입을 씻었다. 그래서 사장에게 직접 물었다. 아담에게 얼마 주고 계세요? 이때 사장은 사실대로, 차이가 나면 그 이유까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벌금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 소멸시효가 6년이니, 이브가 회사를 그만 뒀어도 안심할 일이 아니다.


하여간, 우리는 이런 노동법 내용을 잘 정리해서 손님들에게 보내줬다. 그러자 걸려온 어느 고객의 전화. 우리 회사에 와서, 지금 잘하고 있는지 점검(wage audit)을 해주시겠어요? 만약, 내 직원이 융통성 없이 이렇게 답변을 했다면 - 그것은 노동법이니, 노동법 전문 변호사를 찾아보세요. 십중팔구, 그 손님은 내일부터 변호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꿀 회계사부터 찾아다닐 것이다. 여기서 내 딜레마는 시작된다.

그러나 내 결론과 원칙은 항상 같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야가 있다. 그들이 고객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역 안에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그리고 필요하면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협력할 때, 고객도 성장하고 전문가 자신들도 성장한다. 그나저나 잘 웃어야 성공하나보다. 30년 전, 권총사격 훈련장에서 웃었던 그 친구가 한국에서 지금 제일 잘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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