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양억제 ‘p53’ 20쌍에 암세포 죽이는 ‘LIF6’ 독특
코끼리[AP=연합뉴스]
코끼리는 7t에 달하는 덩치를 갖고 있어 암에 잘 걸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거대한 덩치가 되는만큼 세포분열이 무수히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변이가 생겨 암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인간이 암으로 죽는 비율이 17%에 달하는 반면 동물원의 코끼리 중 암으로 사망하는 개체는 5%가 안 된다. 암 발생 가능성이 인간보다 100배나 더 높은데도 암으로 인한 사망은 훨씬 더 낮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코끼리 유전자를 분석해 왔으며, 수년의 연구 끝에 실마리를 찾아냈다.
16일 뉴욕타임스와 과학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대학 진화생물학자 빈센트 린치 박사 연구팀은 코끼리가 DNA가 손상된 세포를 찾아 죽이는 '백혈병 억제인자 6(leukemia inhibitory factor 6·LIF6)'라는 독특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과학저널 '셀 리포트(Cell Reports)' 최신호에 밝혔다.
연구팀은 인간을 비롯해 모든 동물이 가진 종양 억제 유전자 'p53'부터 연구했다. p53은 DNA가 손상된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고, 세포가 손상된 DNA를 복구하거나 자살을 하게 한다.
린치 박사 연구팀은 지난 2015년 연구에서 인간은 p53 유전자가 한 쌍밖에 없지만, 코끼리는 20쌍에 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암세포로 발전할 수 있는 손상된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미리 찾아 없애는 p53이 많은 것이 암 발생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별도로 진행된 유타대학 연구팀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린치 박사 연구팀은 이 결과에서 더 나아가 코끼리에게만 있는 LIF6 유전자의 존재를 규명했다. p53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이 LIF6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LIF6가 만든 단백질은 세포의 에너지 생산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에 구멍을 내 세포가 죽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포유류가 LIF 유전자를 한 쌍씩 갖고 있지만 기능은 LIF6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코끼리는 LIF 유전자가 8개에 달하지만 이 중 LIF6만 기능을 한다.
린치 박사는 이와 관련, "유전자 복제 과정이 잘못돼 기능하지 못하는 '위유전자(pseudogene)'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를 '죽은 유전자'라고 부른다"면서 "LIF6는 죽은 유전자에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점에서 '좀비'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LIF6는 코끼리 이외에 해우(海牛·manatee)가 갖고 있으며, 화석의 DNA를 분석한 결과, 멸종된 마스토돈과 매머드도 이를 갖고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LIF6는 그 기능은 수천만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약 8천만년 전 유전자 변이로 위유전자인 LIF가 생기고, 약 2천500만~3천만년 전 코끼리가 4.5㎏ 크기의 작은 마멋에서 점점 몸집이 커지기 시작할 즈음 LIF6가 활성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몸집이 커지면서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걱정은 없어졌지만, 세포가 늘어나고 더 오래 살게 되면서 세포 변이로 암 발생이 늘어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LIF6 유전자도 기능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린치 박사는 LIF6가 코끼리 몸에서 p53가 추가적으로 생길 때 생명력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코끼리가 LIF6 이외에도 p53의 명령을 수행하는 다른 유전자들도 갖고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적인 연구를 해나갈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