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대주교님으로부터 경고 편지를 받았었다. 내가 교구에서 가장 가톨릭 학교에 후원과 협조를 안 하는 가장 문제가 많은 본당신부라는 것을 학교 교장, 선생들, 학부모와 주변의 사제들, 그리고 교구청의 직원들까지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계속해서 학교를 후원하지 않는다면 교회법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마디로 짜르겠다는 의미였다. 그때 우리 교구가 지속적인 재정 적자를 겪는 가톨릭학교를 통폐합하는 어려운 과정에 있었고, 많은 본당신부들이 이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와 우리 성당의 가톨릭 학교와의 문제는 뭐 그처럼 가톨릭 학교 통폐합이라는 고상하고 원칙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한인 신자들의 학교 사용 때문이었다.
세상에,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왔어도 갑질이라는 것을 처음 당해 보았다. 본당신부인 나한테까지 이리 못되게 하니 우리 신자들이 오죽이나 힘들었을까? 김치 냄새난다고,냉장고에 뭐 떨어졌다고, 바닥에 뭐 붙어있다고 학교에 가서 내가 청소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지경이었다.
내가 학교에 항의하고 교구청에 회의를 소집하면, 교구청 평신도 직원들이 다 모여서 번번이 내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었다. 여러 학부모들이 온갖 나쁜 소리를 퍼트리니 주변의 신부들도 내 편일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100년만에 처음 임명되었다는 한국인 본당신부로서 정말 어디 기댈 곳도 없고 모가지가 간들간들한 지경이었다.
대주교님께 원망이 가슴에 가득찼다. 현장에서 신자들과 함께 뒹글고 있는 사목자의 어려움은 모르시고, 또 물어보시지도 않고 그냥 법대로 하시겠단다.
나도 내 신자들과 무슨 문제가 있으면 먼저 물어본다.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무슨 일이냐고? 전화라도 한 번 해서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자가 아닐까? 원망이 마구 솟아 올랐지만, 그렇다고 원망만 하고 있으면 누구 손해? 당연히 내 손해다. 원망이나 하고 누구 탓하라고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이 아니다.
섬기려고 왔다! 이해하려고 해보자! 누구나 높은 자리에 있다보면 다들 그렇게 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대주교님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대주교님께 편지를 썼다.
변명도 없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대주교님 뜻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백프로 따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대주교 비서신부를 만났는데 뜬금없이 나보고 고맙단다. 교구 회의에서 우연히 만난 교구 학교 총책임자도 의미있는 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대주교님이 나에게 고맙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한 달만에 내가 학교의 총권한을 지닌 본당신부로 임명되었다는 편지가 와서 나도 놀랐고 교장도 놀랐고 주변의 신부들도 모두 놀랐다. 아! 역시 내 장상에게 까불지 말고 그냥 순종하는 게 정말 잘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도 편했고 양심에도 꺼리낌이 없었다. 나는 순종하라고 불리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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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현 요셉신부/팰팍 마이클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