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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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어디로 갔을까?

2018-06-28 (목) 동진 스님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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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벚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봄 내내 머리 위에 예쁜 깃을 달고, 땅 위를 종종 걸어다니던 메추리 가족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몇 년 이 중에게 밥 심부름 족히 시키던 어미 고양이들과 그 많던 새끼 고양이들은? 여우들은? 매, 부엉이, 잭 래빗, 왔다가 가고, 또 오고, 또 가고, 사라진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온 것은 반드시 간다.

오늘 아침 당신의 식탁을 가득 채웠을, 혹은 어젯밤 식당에서 받아가졌던 음식들과 변기를 통해 사라지는 그 많은 찌꺼기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아주 이 지구에서 사라졌을까? 그릇, 옷, 가구, 집 안에 쌓아둔 그 많은 것들은? 그리고... 당신은? 곧, 사라지겠지. 어디로? 부처님께서 아무리 공,이라고 해도 '내'가 있는 당신은 사라지는 게 두렵다. 그러나 눈 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없어진 게 아니다. 다만 모습을 달리 했을 뿐, 이 세상에 있던 것은 먼지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허공은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곳에 그 모든 것이 있다. '진공묘유'다.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본질 그 자체는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그리고 꽃이든 사람이든, 인연 집산을 통해 사라졌다가 다시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저 메추리가 해마다 봄이면 다시 영화사 마당에서 종종 걸어다니듯이. 당신도 지은 바 업대로 다시 돌아온다. 무섭지 않은가? 빨강은 빨강 쪽으로, 꽃은 열매로, 열매는 나로, 나는 너,로 너는 우리,로. 생명의 흐름은 쉬임없이 계속 된다. 함께 흐른다. 어떻게 다른 생명을 죽일 것이며 어떻게 함부로 씹어 먹겠는가.


불가의 생명존중 사상은 먹지 말라,에 있지 않다. 두두물물이, 뭍 생명이 바로 너이며 우리가 한 몸,임을 알라,는 자비심이다. 아침마다 보는 변이 저녁에 먹는 그 밥임을 알고, 나의 풍요가, 한 쪽의 결핍이 되어, 결국 나를 힘들게 할 것임을 알아서, 아끼며 소중히 여기며 살자,는 거다. 평화롭게. 그걸 안다면, 욕심 낼 일도 뺏길 일도, 함부로 생명을 해치고 죽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덜 험악해지고 그 험악이 내게로 돌아오는 일도 작을 것이다. 이것이 이론이 아니고 진실인데, 과학도 이제 바야흐로 진공묘유까지 왔는데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넌 그렇게 살아라, 난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 한다.

그러나 정말 깨달으면 그리 못한다. 그 많은 성자들은 바보라서 청정히 사는 게 아니다. 공성을 깨달으면 그리 살 수 밖에 없다. 겉으론 고달파 보여도 그들은 진정 자비에 가득 차 있고 평화롭다. 그들이 있어서 세상엔 아직, 선함과 맑음이 변함없이 상속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인류의 살길이다. 우리가 한 몸임을 가르치는 사상은 불교밖에 없다. 세상은 누가 준 게 아니다. 본래로 생명 그 자체, 진리 그 자체, 법계이다. 다 내 몸인데 무슨 다툼과 투쟁이 있겠는가. 같이 다 잘 살자는 것인데. 지금 손에 들고 벌벌 떠는 그 사랑스러운 모든 것, 두 눈 크게 뜨고 보라. 흩,어,지,고, 있다.

당신 또한. 머물러 있는 동안만 박 아무개이지, 흩어졌다 모여, 아랍으로 갈지, 시리아로 갈지, 꽃이 될지, 어디로 무엇으로 올 지 당신은 모른다. 그러므로 남이라고, 나와 다르다고, 함부로 해칠 수 없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불쌍한 희생자들이 더 생각나는 유월, 어김없이 모란꽃이 붉게 다시 피는 걸 보면, 이 중은 가슴이 시리고 무섭다.

세상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거칠어지는 이 시대에, 우리 모두 부처가 되어야 함은, 우리가 다시 살 희망세상을 만드는 시대의 필수요건이다. 그래서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건 불자만의 소임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깨달음, 아주 쉽다. 세상이 한 몸 임만 알면 된다. 깨닫게 되면 생이 달라진다. 사라지는 것에도, 들끓는 욕망에서도, 흐름과 허공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삶이 자유로와지고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세상을 살게 된다. 부디, 조견오온개공.

<동진 스님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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