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돈키호테를 읽어보셨나요?

2018-06-06 (수) 이계선/목사
크게 작게

▶ 독자·문예

"돈키호테를 읽어보셨나요?”
“그럼요 그럼요.바보 산초를 데리고 비쩍 마른 말 로시난테를 몰아 풍차를 공격하 돈키호테 말이죠?양떼를 백만대군으로 착각하여 ‘무찌르자 오랑케 몇 천 만이냐!’ 필마단기로 달려들기도 했지요.목동들에게 흠씬 몰매를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됐지만.중세 암흑시대를 고발한 바보소설이지요”

“3년된 서당개처럼 청산유수로 풍월을 늘어놓는걸 보니 만화로 돈키호테를 읽은 것 같소.2,000페이지짜리 완본판을 번역한 돈키호테를 읽으면 너무 방대하여 내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을텐데”

“와우!2,000 페이지짜리 돈키호테가 있어요? 나는 초등학교때 코주부 김용환의 만화 돈키호테를 읽었지요”


이제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돈키호테 모르는 이가 없었다.안 읽어도 다 아는 게 돈키호테다.돈키호테 읽었다는 사람치고 제대로 읽은 사람 보질 못했다.대부분 만화나 동화로 읽었기 때문이다.

나도 금년초에야 제대로 된 돈키호테를 읽었다.만화 돈키호테이후 65년만이다.5년 전 뉴욕 후러싱 서점에 들려보니 번쩍번쩍 900쪽짜리 돈키호테가 눈에 띄었다.
상하권을 읽고 나니 돈키호테를 알겠다.상권은 돈키호테편 하권은 산초편이라 할만하다.

상권-라만차에 몸이 비쩍 마른 키하노라는 가난한 귀족이 있었다 1세기전에 있었던 기사도 책을 탐독하던 그는 망상에 빠져 스스로 기사가 된다.이름을 돈키호테로 바꾸고 자기보다 더 비쩍 마른 애마 로시난테의 등에 올라 창을 높이 쳐들었다.바보 농사꾼 산초를 판사로 임명한다.법관 판사가 아니라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수종 드는 몸종을 판사라 불렀다 땅땅보 산초 판사는 당나귀를 타고 허둥지둥 따른다.

부녀자 아가씨 병자를 구하고 악당들에게 사로잡힌 공주님을 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망신만당한다.만신창이가 되어 고향으로 회군한다.여기까지가 만화나 동화로 나온 상권내용이다

하권-푹 쉬고 무장을 재정비한 돈키호테가 다시 출정하면서 하권이 시작된다.상권과 정반대다.돈키호테가 상권에서 벌린 무용담을 소설가가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돈키호테와 바보산초가 벌리는 기행담은 너무나 재미 있었다.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돈키호테와 산초는 가는 곳마다 스타대접을 받는다.고향에 있는 친구인 신부 이발사 교사는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도록 원격조정을 한다.

하권에서는 산초 판사가 주연처럼 보인다.일자무식이지만 주어들은 속담실력으로 듣는 귀들을 사로잡는다.바로셀로나로 가는 길에 돈많은 공작부부를 만난다.책을 읽어 다 알고 있는 공작은 모른 체하고 진짜기사처럼 융숭하게 대접한다.산초에게는 돈키호테가 주겠다고 약속한 섬나라를 떼어준다.산초가 솔로몬의 지혜로 섬을 통치하여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배를 곯게만든다.굶어죽게 되자 산초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몸종(판사)으로 복귀시켜 달라고 애걸한다.

몸이 쇠약해진 돈키호테가 고향 라만차로 돌아왔다.병상에 누워 지난 세월을 회고한다.자기의 정신상태가 잘못 됐다는 걸 깨닫자 입술에는 웃음이 눈에는 눈물이 감돈다.임종을 지키는 세 친구들도 눈물을 흘린다.죽어가는 돈키호테의 모습이 아름답다.책을 다 읽은 나도 눈물이 난다.

“라만차의 돈키호테여,당신은 영원한 기사입니다”
돈키호테는 소설이다.견강부회(牽强附會)나 아전인수(我田引水) 억지로 끌어다가 맞춰 해설할 필요는 없다.돈키호테를 읽어라.젊은이가 돈키호테처럼 살면 안 된다.그러나 돈키호테가 있어야 한다.그래야 세상에 웃음이 눈물이 살맛이 용기가 있으니까.

한국에도 돈키호테가 있다. 70여년 전 변영로, 오상순, 염상섭, 백관우가 삼각산에서 말술에 대취하자 홀라당 발가벗었다. 나체춤을 추고 맨몸으로 하산하는데 길가에 매어있는 소를 풀어 소등에 올라타고 시내에 진군, 풍기문란 단속경찰도, 구경꾼 아줌마도 박장대소했다.
“와, 나폴레옹의 파리 개선문 입성보다 멋지다.”

<이계선/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