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 바람에 봄햇볕은 거의 맥을 못췄다. 예년 같으면 서둘러 찾아온 여름을 탓하면서 서늘한 곳을 찾기에 바쁠 이 즈음, 그러나 올해는 아직 겨울인가 다시 겨울인가 싶게 을씨년스런 날씨가 계속됐다.
북가주 한인사찰 분위기는 달랐다. 따스했다. 경건했다. 평소에 비교적 한산했던 부처님 도량들에 독경소리와 염불찬불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흐르고 우렁차게 넘쳤다. 일상의 분주 때문에 혹은 알 수 없는 해이 때문에 절을 찾는 발길이 뜸했던 이들도 간만에 모였다. 흐트러진 불심을 다잡으며 독경과 찬불에 목소리를 보탰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서다.
샌브루노 여래사(회주 설조 스님) 새크라멘토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 등 북가주 한인사찰들은 20일(일) 정기 일요법회를 겸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봉행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양력으로 5월 22일(음력 4월 8일)이다.
봉축행사는 예년에 그랬듯이 대개 개회사, 삼귀의, 육법공양, 봉축발원문, 봉축사, 봉축법문, 관불식 등 순서로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봉축행사의 중요한 두 축은 육법공양과 관불의식이다. 육법공양은 향, 등, 꽃, 과일, 차, 쌀 등 6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관불의식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되새기며 불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로이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아기부처님에 목욕을 시켜주는 의식이다.
약 70명의 불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열린 여래사 봉축행사에서 회주 설조 스님은 봉축법어(전문 별도박스 참조)를 통해 “생명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을 이 세상에 처음으로 말씀하신 부처님”의 위대함을 거론한 뒤 지난 1978년 인도 성지순례 때 목격했던 신분차별 사례를 들며 근 2,600년이나 지났음에도 부처님의 사상이 온전히 퍼지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스님은 “우리 겨레에겐 아주 좋은 소식도 있다”며 “남북한의 정치책임자들이 화해와 공존을 논의한다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최근의 남북해빙무드를 높게 평가했다. 이날 여래사 봉축법요식에서는 과거 북가주 불자연합 행사에 단골로 출연해 경쾌한 아일랜드 댄스 등을 선보였던 하나 머가완 자매가 각각 예비대학생과 고교생이 되어 참석, 발원문 배부 등 봉사활동을 했다.
정원사의 봉축행사에서 주지 지연 스님은 “아무리 오래도록 세상이 변하더라도 세상의 최고보배는 불법승 삼보”라고 강조하며 부처님의 열가지 이름인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을 각각 되새겼다. 스님은 또 “불교를 깨닫는 방법은 한가지만이 아니다. 참선만이 최고라고, 화엄경만이 최고라고, 기도만이 최고라 하면 안된다. 다섯 손가락 중 어느 손가락이 최고냐고 물어보면 어떻겠느냐. 어리석은 중생만 도토리 키재기로 자기가 최고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한 뒤 “부처님은, 그 태어나기 힘든 인간으로만 오백생을 윤회하셨으니,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보고 알며 사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마음을 깨달은 사람, 견성을 한 사람이 부처”라고 강조했다. 정원사는 음력 초파일인 22일에도 제등행렬 등 봉축행사를 했다.
대승사(주지 설두 스님)의 봉축행사는 1997년 개원 이래 산타클라라 법당에서의 마지막 행사였다. 대승사는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차례로 구입한 길로이 새 부지로 이전불사를 진행중이다. 설두 스님은 봉축법문에서 “세상 자체가 다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 같지만, 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나부터 진리에 바로 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밖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하나도 없다. 주위를 탓하지 말고, 주위가 안좋을수록 나는 더 열심히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바른 지혜의 길을 갈 수 있어야겠다”며 “오늘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겨주시고 이렇게 많은 제자들을 낳으셨다. 기쁜 마음으로 오늘을 즐거이 보내고, 이 생을 다하고 다음 생을 다할 때까지 이 좋은 마음을 계속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60여 참가자들을 독려하고 축원했다.
카멜 삼보사(주지 대만 스님), 새크라멘토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 오클랜드 돈오사(주지 돈오 스님), 마리나시티 우리절(주지 운월 스님)에서도 부처님의 탄신을 경탄하고 불자로서의 자세를 새로 다지는 봉축법요식을 가졌다. 리버모어 고성선원(선원장 진월 스님)과 샌프란시스코 불광사(회주 송운 스님)는 진월 스님 주재하에 불광사에서 연합봉축행사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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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