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14일 타계한 영국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과학적 업적 못지 않게 종교와 관련된 문제적 발언도 많이 했다. 특히 신의 존재를 무시거나 경시하는 발언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2010년 6월 ABC방송 인터뷰도 그중 하나다. 앵커가 물었다. "과학과 종교가 화해할 수 있는가?" 호킹은 답했다. “종교는 권위(authority)를 기반으로 하고 과학은 관찰(observation)과 이성(reason)을 기반으로 한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결국 과학이 이기게 될 것이다.”
그의 거듭된 문제적 발언에 불교계는 무덤덤했다. 무덤덤 정도가 아니었다. 더러는 강건너 불구경 태도를 보였다. '불교=과학(적으로 증명된 종교)'라는 신념 내지 긍지가 강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과학적 성과를 인용하거나 저명 과학자들 발언을 빌어 부처님 가르침의 우수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시도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온당한가. 한국의 뇌과학 선도자 중 한명인 박문호 박사(사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학창시절 한국불교연구원 구도회에서 활동했고 몇년 전 불교방송(BTN)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 <137억년 우주의 진화> <뇌와 세계의 출현> 등 특강을 맡는 등 '불교인 과학자'로 이름높은 그는 왜 그런 시도를 경계할까. 지난 연말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과학, 심리학 그리고 명상의 미래> 강연을 앞두고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유를 밝혔다. 뇌과학과 종교, 뇌과학과 명상, 참다운 공부 자세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음은 간추린 내용이다.
-뇌과학 분야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종교와 관련된 부분은?
△치매에 관한 분야, 기억에 관한 분야, 언어에 관한 분야, 브레인 사이언스가 다루는 분야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다 포괄하기 어렵다. 그중 의식에 관한 분야, 특히 철학이나 인문학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뇌과학의 명상관련 연구는?
△티벳 고승들이나 수녀들, 수행자들의 브레인 상태를 직접 측정하고 오랫동안 연구한 분들이 있다.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구루들이, 석가모니도 마찬가지고, 평생 관심을 가졌던 게 우리 생각이 어떤 식으로 생성되는가, 어떤 식으로 사라져가는가, 이런 것을 종교적 용어로 설명했다. 지금은 그것이 분자세포생물학의 핵심적인 연구테마다. 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 인간의 경우 그것은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이다. 그 기억은 인간의 대뇌피질에 신경세포에 신경망에 저장돼 있었던 거다. 그걸 불러오는 과정에 신경세포의 뉴런 하나하나에 일어나고 있는 시냅스상의 변화, 그걸 상당부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생각을 이루는 분자적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는 거다.
-뇌과학의 시각으로 명상을 설명한다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전달물질도 있고, 글루타메이트나 도파민 이런 건 우리에게 집중을 하게 하고, 아드레날린 같은 거는 위기상황에 대응하게 하는 액티베이션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반면에 가버라든지 세라토닌 이런 거는 사람을 조용하게 만든다. 그런 케미칼들이 서로 밀고당기고 하는 속에서 각성상태가 있고 수면상태가 있게 된다. 세라토닌이나 가버물질이 부족하면 사람들이 쉽게 흥분한다. 정신병까지도 연결될 수가 있다. 균형이 핵심이다.
-불자들이 과학을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은?
△두 분야의 유사성에 대해서 너무 강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두 분야 다 공부효과가 별로 없다. 유학을 하는 어떤 분한테 입자물리학에 관한 책을 선물을 했었다. 한달 후에 전화가 왔다, 대단히 좋은 책을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입자물리학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다 주역에 나온다는 거를 알고 있느냐고 묻더라. 아뿔싸 이 분은 과학을 공부한 게 아니고 자기가 공부하고 있던 주역을 과학의 힘을 빌어서 더 확고히 했구나, 과학을 공부한 게 아니고 주역을 공부했구나 (생각했다). 나는 이게 핵심이라고 본다. 불교를 하는 분들이 과학을 공부할 때는 불교를 떠나서 해야 되고...
-과학과 명상공부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줄 한마디는?
△어떤 걸 배운다는 것은, 강연을 듣든 책을 보든, 지식을 훔치는 거다. 제대로 된 도둑이 돼야 된다. 자기한테 있는 걸 훔치지 않는다. 자기한테 없는 걸 훔쳐야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든 책을 보든 재미있다 의미있다 하는 거는 그 비슷한 기억을 자기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학습이 아니다. 무릎을 치고 호응을 한다 해서 새로운 지식이 는 거 아니다. 자기가 알고 있던 신념을 더 강화시키는 행위일 수 있다. 모르는 걸 습득하는 게 공부다. 전적으로 모르는 걸 어떻게 습득하느냐. 훔칠 수밖에 없다. 모르는 걸 기억하면 기억세포가 바뀐다. 그러면 그 사람이 보는 세계가 바뀌기 시작한다. 모르는 걸 보면 즐거워해야 된다. 그런 개념을 하나 갖게 되는 것, 그게 내가 전달하고픈 핵심개념이다.
<출처: 붓다 빅퀘스천 동영상, 녹취/정리: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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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