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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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내일 또 내일

2018-03-29 (목)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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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무상하여,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나 평등하여, 누구나 다 죽는다. 머 그런 거다. 꽃 지듯이. 눈 녹듯이. 그렇게 얼마전 저 역사적인 스티븐 호킹 박사도 생을 달리 했다. 그렇다고, 들었을 뿐, 누가 그게 사실이냐, 대놓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모르겠다, 일 것이다. 직접 못 봤으니까. 그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면서도 개인적으로 이 산승이 호킹 박사를 굳이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건 몰라도, 알 수도 없지만, 기존 모든 규정, 된 것들을 거부하고, 오늘을 새롭게 산, 그의 삶의 방향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친했던 천재 친구 하나 쯤 잃은 느낌이랄까. 이미 그는 스무살 무렵에 2개월 남짓, 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내일이 없다, 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았다고 한다. 그 치열한 생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늘 내일이 있다 여겨, 내일 준비 하느라, 오늘을 답보하고 사는 사람들은? 내일이 없음을 알았기에, 그의 삶은 오늘, 늘 치열할 수 있었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우주와 저 견고한 상대성이론에도 도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일 죽는 이는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다 죽어도, 자신만은 오래 살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특히,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걸 두려워한다.

보수를 지향하고 권력에 복종하며 그 연장선의 궁극은 생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쉽게 말해 오래 살고 싶고 오래 누리고 싶고 죽기 싫다. 그래서 내일을 사는 이들은 뭐든 쌓고 욕심내며, 모든 것이 흐름, 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머물,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잃으면 좌절이요, 고통이다. 그렇게 내일을 살다 죽을 때야 안다. 그 때 할 걸. 호킹 박사는 순간의 삶을 살았다. 병으로 인해 내일 따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누구보다 지식인인 그는 말한다.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기존 지식이 주는 환상" 이라고. 세상에 속지 말라, 는 부처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지식을 토대로 살 수밖에 없고 지식에 갇혀 산다.


사실인지도 모르면서 누가 지구가 둥글다, 면 둥글다고 믿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사과 하나도 그냥 못먹고, 바이타민, 산성, 독, 식초 등등, 줄줄이 떠올라오는 지식과 함께 먹어야 한다. 밖에서 던져지는 이런 정보의 성가심에 대하여, 이 중은 때로 미치게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 지식들이 다 사실이던가? 모른다. 모르면서 사람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그 환상에 갇힌다. 이미 어릴적부터 세상에 갇혀, 빼앗긴 자유를 잊고, 기존 질서에 갇혀야만 잘 살 수 있다, 믿고 산다. 흐름은 막히면 썩는다. 맑은 삶은 비워냄에 익숙해지고 뭐든 쌓으려는 데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호킹 박사는 세상 모든 폭력적인 기존 질서를 믿지 않았다. 아니 답습, 하지 않았다고, 거부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는 신조차도 믿지 않았고 사후세계도 믿지 않았다. 믿기 싫었다기 보다는 과학자답게 확실치 않은 기존 지식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지식에 도전했던 호킹 박사도 지금은 지식 속에 남았다. 지식의 아이러니다. 그가 남긴 지식은 누군가에게 답습되고 누군가에겐 부숴지며, 세세생생 시비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저 아인슈타인처럼. 이렇듯, 생은 누구에게나 환상이고 무상이고 영원이다. 이것을 불가에선 '영원담적무고무금 묘체원명하생하사,' 라 한다.

생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이 몸이 죽으면 끝이라고, 단적으로, 단편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생사는 없다. 그저 변할 뿐이다. 변하며 연속된다. 누구나 죽고 다시 살아, 세상 모든 생의 인이 되고 연이 된다. 삶 자체는 변화, 뿐이다. 순간도 흐른다. 따라서 오늘 같은 내일은 없다. 내일의 당신은 이미 오늘의 당신이 아니다. 오늘 일은 오늘 밖에 못한다. 그리하여 오늘, 을 살라고, 부처님께선 고구정녕 말씀하셨다. 늘 오늘을 산, 호킹 박사를 추모하며.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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