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기고] 사순절의 사색

2018-03-22 (목) 김종인 목사/ 오이코스 대학교 총장
크게 작게
시대정신, 이 말은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각자라는 뜻과 함께 외로움, 고독 혹은 사람들에게 돌에 맞기 쉬움, 모난 돌이라는 단어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헤겔은 이 시대정신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이며 원동력이라고 표현했고, 그래서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대정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로 믿고 있는 우리 기독교 신자들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그래서 헤겔이 언급한 것처럼 시대정신으로서의 예수의 길은 고독, 고난, 돌에 맞음과 같은 단어들과 연결되는 삶이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각자들의 어찌 보면 필연적인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민망한 표현이지만 30여년의 목회자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은퇴를 앞둔 지금, 이제서야 간신히 그 분의 삶의 부분이었던 고난과 외로움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더 솔직한 표현은, 단순한 느낌 이상의 어떤 것인데,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까지 “주여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들이 무슨 일인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라고 외치셨던 예수님은 아마도 한 사람도 그 분과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는 깊은 고독감이였을 것이다. 그 느낌이 나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묵직한 살 떨림과 함께...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 그 분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후에 예수님을 장사 지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과 의사소통이 되지는 못했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원하신 사람은 아마 장사를 지내주는 사람이 아닌,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부터 예수님이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그 분이 원하는 소통이였을 것이다.
사순절의 기간 동안 전통적으로 교회는 금식을 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느끼는 의식을 행한다. 금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광야에서의 40일 동안의 금식에 동참하며 그 분의 고통을 같이 느껴보는 의식이다. 젊은 신학자인 이주형목사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 훈련’이라는 책의 ‘금식’이라는 항목에서 기독교 영성가들은 금식을 인간의 욕망을 예수님의 욕망으로 변화 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한다.

금식을 통해 신자들은 그 분이 긴 세월을 하루같이 함께 하심(사63:9), 그의 백성들의 고난을 함께 감당하시고(사63:8), 환란 중에도 함께 하심(시91:15),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에도 늘 함께 동행하신(시23:4) 그 분의 내어주심(kenosis)의 행보를 공유(소통)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 분의 고난을 함께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그 분의 내어주심으로 시작된 구원의 시작이 완성과 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요16:7).

부활과 영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순절의 의미가 없다.

비가 오는 계절이다. 비오는 인생의 계절에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이다. 그런데 비를 함께 맞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다.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그 분의 시선과 같은 시선으로 그리고 그 분의 심장과 같은 심장으로 세상의 고통을 그 분과 함께 담아내는 교회!

그 분이 가장 행복해 하실 것 같다.

내 목회의 대부분이 그 분의 큰 염원을 담아내지 못하고 피상적인 구원의 교리만 전달 했다는 민망함과 자책을 고백하며...

<김종인 목사/ 오이코스 대학교 총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