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항 감리교회는 애국가 작곡 태동지
▶ 3.1절 기념예배도 거행
상항한국인 연합감리교회가 지난 25일 교회역사 전시관에 ‘애국가의 태동지 상항교회와 안익태’동판을 설치하고 있다. 왼쪽두번째 부터 애국지사 김찬도옹 2남 김은용 권사.유고명 역사보존위원장. 송계영 담임 목사.[사진 상항 한국인 연합감리교회]
상항 한국인 연합감리교회(담임 송계영 목사)는 지난 25일 안익태의 애국가 작곡의 태동지임을 알리는 동판을 교회역사 기록전시관의 벽에 부착했다.
이날 설치한 동판 기록에 의하면 안익태는 1930년 유학길에 상항한국인 연합감리교회를 방문하여 작은 음악회에 앞서 애국가를 불렀는데 그곡이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 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을 알고 신성한 대한국 애국가로서 그 곡조를 사용하는 것은 수치스러워 새로운 애국가 작곡에 나서게 됐다.
안익태는 당시 동 교회 황사선 담임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상항교회에 도착하여 가장 깊은 인상을 준것은 강단위에 걸린 태극기와 제 일생에 처음부른 애국가라면서 이때받은 감격과 영감이 애국가 작곡을 결심 하게 된것으로 밝히고 있다.
애국가를 작곡하기로 한 안익태는 1933년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퍼스트 솔로 첼리스트로 활동하고 필라델피아 커티스음 음악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할 때도 애국가 작곡에 힘썼다. 1930년 중반에 작업을 마친 안익태는 여러 유능한 음악가와 동포들의 의견을 들은후 1935년 11월에 곡을 완성, 세상에 발표후 상항교회에도 직접 악보를 보내주었다.
안익태가 1930년 상항교회에서 영감을 얻어 애국가를 작곡한 후 1936년 상항감리교회에 보내준 애국가 악보.
신한민보 보도(1936,3,26 1면)에 의하면 안익태는 애국가를 부를때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있게 장엄하고 부를것을 해설을 통해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동 교회 100년사 책자와 신한민보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상항 한국인 연합감리교회는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 작곡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3.1절을 기념해 ‘애국가의 태동지,상항교회와 안익태’ 동판을 설치했다.
이날 전시관에 안익태 동판 제막에는 송계영 담임 목사와 유고명 역사 보존 위원장,독립 운동가 김찬도 옹의 아들인 김은용 권사등이 참여했다.
또 상항교회는 3.1절 99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기념 예배도 드렸다. 이날 예배는 송계영 담임 목사의 ‘생명의 사람’제목의 설교와 동 교회 교인이었던 고 김찬도 옹의 독립 정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찬도 옹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1928년 ‘수원 고등 농림학교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로 옥고를 치렀다.
이날 예배는 고 김찬도옹의 2남인 김은용 권사의 선창에 의한 만세 삼창으로 끝났다.
상항한국인 연합감리교회는 유고명 역사보존위원장의 노력으로 지난해 ‘교회역사 기록전시관’을 개관하고 독립 운동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를 해 오고 있다.
<
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