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품시계는 왜 자사 부품 고집할까?

2017-12-20 (수)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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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텍필립·리차드밀 등 수리 더 어려워

명품시계는 왜 자사 부품 고집할까?
고가 명품 시계들이 자사 모델에만 사용하는 나사와 공구를 고집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하이엔드 워치의 지존격인 파텍필립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사의 특정 모델에만 사용가능한 나사 부품과 공구를 고집해 왔고 리차드밀 역시 비행기 프로펠러 재질로 사용되는 5등급 티타늄 소재의 나사와 전용 공구를 고집하고 있어 부품 교체나 수리가 매우 까다롭다.

그랜드세이코는 회전자의 고정방식이 로터 나사홈 대신 3개의 점이 삼각을 이루는 형태이고 이에 적합한 공구만으로 수리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젠 롤렉스조차 신형 모델부터 자사 부품과 그게 맞는 공구를 고집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간 롤렉스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품을 줄여 심플함과 내구성·정확도로 명성을 얻었다. 여타 명품시계들과는 달리 단순미학을 추구하는 부품 설계로 수리와 보수도 그만큼 용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타 시계들과는 다른 위치에 나사를 배열시키고 티타늄 등과 같이 더욱 고급스런 나사 부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시계 성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왜 자사의 부품과 수리 공구를 고집하는 것일까?

제작 기술력이 이만큼 앞서 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 기저엔 마케팅 전략이 깔려 있다. 고가의 가격대에 어울리는 차별화된 소재와 부품 결합 방식, 따라서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작품(시계)에 일반 공구는 접근 금지”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일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같은 이러한 마케팅 방식의 브랜드 구축은 해당 시계를 소유한 사람에겐 강한 프라이드를 가져다주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이러한 고가 브랜드 오버홀 경험이 별로 없는 시계수리사들은 시계 뒷백을 오픈할 때부터 다른 구조방식으로 인해 헤맨다. 일찍이 이런 난감함을 경험했던 시계수리사, 즉 하이엔드를 비롯한 고가의 시계 오버홀 경험이 많은 장인들은 각 명품 브랜드 수리에 맞는 공구를 구비해 놓는다. 손재주가 좋은 극히 일부 관록의 수리사들은 공구를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일반 공구로는 접근하기 힘들게 설계한 명품시계들, 그래서 그에 걸맞는 공구와 매우 숙련된 수리 실력을 요하며 수리비 또한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명품시계의 높은 가격 속엔 위와 같은 브랜드 가치가 반영된 것은 당연하다.

한 소비자는 “시계의 성능과는 무관하다는 가정 하에 나사 부품이나 설계방식, 그리고 그 수리를 위한 공구 등을 특화시킨 브랜드 차별화 전략은 또 다른 부가가치 창출이지만 그 비용 부담은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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