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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감

2017-11-16 (목) 김문철 목사 /천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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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80 년대 가수 이용이 불렀던‘서울’이라는 노래의 가사말이 생각난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가리라.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나는 이 노래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당시 내가 살았던 서울은 거의 콘크리트였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잔디는 거의 없었다. 그런 환경의 서울에서 과일 나무를 보는 것은 그야말로 서울시민의 꿈과 이상이었다.

미국에 오니 한국과 비교되었다. 도시 한가운데는 물론 주택가를 조금만 돌아도 사과, 레몬, 감나무와 같은 과실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담장 밖으로 달린 열매는 누가 따 먹는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도로변과 주택가는 거의가 잔디밭이다. 그러다보니 다람쥐, 칠면조, 사슴들도 덩달아 이웃사촌이 되어 뛰어다닌다. 서울과는 다른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요 ‘서울’의 가사말을 미국시민이 들으면 의아해 할 것 같았다.

추수철이 되었다. 특별히 지난 한달여 동안은 감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 북가주에는 풍부한 일조량 때문인지 집집마다 감나무를 많이 심는 것 같다. 교인들이 여기 저기서 단감, 홍시감 등을 많이 수확해서 내게도 나누어 주셨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받은 것을 주변에 나누어 주고도 남을만큼 감이 풍성히 쌓였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요즘 교회 주차장에서는 감 봉지를 서로 나누는 모습들이 수시로 목격된다. 보기에 흐믓하고 감사한 일이다.

감을 신나게 먹으면서 왠지 가수 이용의‘서울’의 노랫말이 자꾸 떠 올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지금 종로에는 사과나무가 있을까? 을지로에는 감나무가 있을까? 부디 그러길 기대한다. 기왕이면 다람쥐와 고라니와 같은 동물들도 이웃 사촌이 되어 뛰놀면 좋겠다. 그래서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이 조성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들은 왜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세상을 꿈꿀까? 생명에 대한 갈망 때문 아닐까? 푸르름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푸르름 속에서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도록 창조하셨다 (에덴). 그런데 욕심이 죄를 낳아 생명 대신 죽음이 찾아왔다. 푸르름 대신 메마름이 찾아왔다. 사회적으로는 격리와 외로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전쟁과 같은 반 생명적 현상들을 낳았다. 자연적으로도 가뭄, 산불, 황사, 그리고 산업폐기물 방출과 같은 반 생명적 현상을 낳았다. 비극이다. (에덴의 동쪽)

하지만 에덴의 동쪽이어도 푸른 생명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성경은 그 갈망이 창조주 예수 안에서 회복 및 완성되어 간다고 말한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절망이 기쁨으로 바뀐 것 (요 2장), 오병이어의 기적이 메마름 속 푸른잔디 위에서 펼쳐진 것 (요 6장),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 (요 11장) 등이 그 증거들이다. 모두가 메마름이 푸르름 현상으로 바뀐 사건들이다

성경 요한계시록은 이 회복의 완성판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그려낸다: “길 가운데로 생명수가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 푸른 잎사귀와 과일은 치료이고, 기쁨이고, 생명이다. 지금 이 땅에서 누리는 것과 연장선 상에 있지만 동시에 차원이 다른 미래적 생명의 푸르름을 말한다. (새 에덴)

추수철을 맞아 쏟아지는 감을 통해 나눔이 풍성해지매 감사하다. 무엇이든 많이 있어서 서로 나누며 기쁨과 사랑을 누린다면 축복이다. 우리에게 그런 일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새하늘과 새땅으로 그려진 푸르고 푸른 생명나무의 풍성함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실상임을 날마다 경험했으면 좋겠다. 올 가을 감 맛은 참으로 달다!

<김문철 목사 /천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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