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얼핏 떠오르는 말들은 긍정적이고, 풍요롭고, 낭만적인 말들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거두어들이는 추수(秋收),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 나무 아래를 낙엽을 밟으며 걷는 청춘 남녀들의 낭만(浪漫).
그러나 가을이 주는 선물은 이런 풍요로운 것들 만은 아니다. 아침 저녁 기온이 점점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움츠려들고 마음이 스산해 지며, 특히 사랑하는 반려자와 생이별이나 사별로 혼자 남아 쓸쓸이 외로운 집에서 서글픔을 달래며 괴로워 하는 계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고어에도(반첩여) 추풍선(秋風扇), 가을 바람에 부채, 쓸모 없는 물건, 남자에게 버림받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면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기 위해 시인들은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시어들을 나열한다.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당신에게 떠나는 향기/내게는 눈물 같은 술의 향기/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김현승의 ‘가을의향기’에서).
“가을은 지상의 모든 것이 소멸하는 그래서 허무한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가을은 안으로 스며드는 고요함이 있는 계절이며 이 고요는 사색과 연결되어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연의 외적현상으로부터 깊은 내면의 의식 속에 파묻히는 고요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홀로 앉아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고독한 모습이 그것이다” (조태일의 ‘가을의기도’에서).
같은 맥락에서 얼마전 어디에선가 사추기(思秋期)에 대해 읽었던 글이 생각나다. 20대가 겪는 사춘기에 대칭되는 말로, 주로 50대 여자들, 젊다고 하기엔 좀 늦은 것 같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 젊은, 그리고 아이들을 다 키운데다가 집안일도 점점 단출해져 여가가 늘어난, 외로운 이 또래 여자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고민하면서 서성거리기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탈출구로 집을 뛰쳐나와 같은 친구끼리 어울려 외식과 여행을 즐기는 성장한 중년 여자들은 서울의 이름난 음식점, 그리고 교외의 카페를 가득 매운 대낮의 손님들이라는 것이다.
부부관계에서도 이때쯤 찾아오는 권태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위기를 맞게 된다. 결혼의 네 단계(신혼시절,육아,직업에 충실한 단계, 둘째단계는 결혼 5년에서 10년쯤 되는 시기로 일에 충실하며 가정을 정착시키는 단계, 셋째는 갈등과 숙제를 풀면서 상대방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깊어져 그냥 사람에 대한 환상을 포기 하고 습관적으로 사는 단계, 넷째는 모든 것이 해소되고 같이 늙어가는 상대를 불쌍하고 애틋하게 보는 단계) 중 가장 위험한 삼단계를 잘못 넘기면, 아예 요를 따로 쓰거나 아니면 트윈베드가 편하다고 하고, 결국은 각자 다른 방을 쓰며 개 닭 보듯 부부끼리 쳐다보며 대화가 단절된채 한 지붕 밑에 사는,그리고 죽을 때까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부부가 되고 말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졸혼(卒昏)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과는 다른, 법적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부관계를 말한다. (이말은 일본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간한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사용)
다행히 요즈음 교회에서 이런 졸혼 상태의 부부 생활은 피로감이 쌓이고 결국 ‘결혼탈진증상’에 빠질것을 우려, 다시 하나님이 원하셨던 완벽한 부부관계로 돌아가는 일, 리혼(Re婚 -다시 진정으로 하나됨)만이 행복한 일생을 마무리 하는 최선의 길임을 강조하고, “결혼생활도 리모델링을 해야한다. 낡고 오래된 집에 금이 가고 지붕에서 물이 새면 다시 깨끗하게 수리하듯 부부사이도 재수선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권장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 찌로다(창 2:24).”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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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 /행복 연구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