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총기난사와 가정폭력

2017-11-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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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쓰이는 표현 중에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말이 있다. 위험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어떤 요소나 징후를 의미한다.

지난 5일 텍사스, 샌앤토니오 인근 교회에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탄광 속 카나리아’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주일예배를 보던 교인들 26명이 떼죽음을 당한 참혹한 사건 앞에서, 그리고 이런 대량살상 총격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이슈이다.

원한은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수십명씩 죽이는 냉혈한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무엇이 사람을 악마로 만들었을까, 이런 악마를 미리 가려내는 방법은 없을까 … ‘카나리아’를 찾아낸다면 앞으로 유사 총격사건을 예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친구였다. 탄광에 일하러 갈 때 광부들은 항상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갔다. 카나리아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단순히 새소리가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20세기 이전 탄광에는 환기시설도, 유독가스 검출장치도 없었다. 수십, 수백 미터 지하 갱도에서 일하면서 광부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 중 하나는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독성가스에 노출되는 일이었다.

카나리아는 일종의 가스 검출기였다. 독성가스에 대단히 민감해서 소량만 있어도 바로 죽는다. 노래하던 새가 조용해지면 광부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탄광에서 탈출했다.

대량살상 총격사건을 경고해주는 ‘카나리아’로 ‘가정폭력’이 제시되고 있다. 총기 난사범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평소 가정폭력을 일삼은 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텍사스 총기 난사범 데빈 켈리만 보더라도 2012년 공군 복무 당시 아내를 구타하고 목을 조르고 총기로 위협했으며, 아내의 갓난 아들을 때려 두개골 골절상을 입혀 처벌을 받았다. 지난 6월 연방의회 인근에서 야구 연습 중이던 공화당 의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제임스 호지킨슨 역시 2006년 딸을 때리고 목을 조른 폭행 혐의로 체포되었었다.

지난해 여름 플로리다, 올란도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 49명을 숨지게 한 오마 마틴도 가정폭력범이었다. 전처와 결혼생활을 할 당시 수시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지난 2015년 콜로라도의 가족계획 클리닉에서 3명을 총격 살해하고 9명에게 총상을 입힌 로버트 디어 역시 두 번의 결혼생활 중 툭하면 폭력을 행사한 난폭한 남편이었다.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이치, 집안에서 폭력 휘두르는 자는 어떤 계기가 생기면 바깥 공공장소에서도 폭력을 행사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어떤 계기일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악마 같은 자들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극악성이 언제 어떤 계기로 폭발하든, 그들의 폭력을 극대화해줄 총기가 주변에 넘치게 널려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이 대량살상 총격사건의 ‘카나리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총기난사 예방으로 이어지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총기 구하기가 지금보다 조금은 어려워져야 한다. 반자동 소총을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나라에서 총기난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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