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수다 떠는데 학교 가면 침묵… ‘선택적 함구증’ 의심해봐야
2017-10-10 (화)
김치중 의학전문 기자
평소에는 말을 잘하다가도 학교 등 특정 공간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진경(9ㆍ여)이는 가족들 앞에서는 유창하게 말을 하고 자기 주장도 강하다.
하지만 유독 학교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1학년 때는 환경변화에 따른 일시적 적응장애로 여겼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진경이가 앓고 있는 질환은 바로 ‘선택적 함구증’이다.
선택적 함구증은 보통 3~5세 발병한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아이들은 대개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해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질적 특징이 있다”며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 선택적 함구증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발병 후 3~5년이 경과한 후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정에서는 말을 잘하기 때문에 언어장애가 동반되지 않는 한 발견하기 힘든 질환”이라고 말했다.
흔히 선택적 함구증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시적 적응장애와 혼돈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수줍음이 많은 아이의 경우 낯선 사람이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일시적으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선택적 함구증이 아니다. 선택적 함구증 진단기준에도 ‘초등학교 입학 후 1개월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일시적인 적응장애는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선택적 함구증은 그렇지 못하다.
선택적 함구증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해야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10세 이하 때 발견해 치료하면 예후가 좋지만 12세 이상 질환이 지속되면 예후가 좋지 않다”며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자존감 저하, 우울증, 학업성취 저하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선택적 함구증을 치료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면 독립성, 성취감, 사회적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져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택적 함구증은 불안장애 일종으로 부모가 사회불안장애가 있거나, 지나치게 부끄러움을 탄 적이 있다면 유전ㆍ생리학적으로 자녀가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김 교수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는 아동의 부모나 친척 중 사회불안장애 등 불안장애에 노출된 이들이 많다”며 “특히 부모가 사회불안장애가 있다면 자녀의 사회적 상호작용 기회가 감소돼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 사회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선택적 함구증 증세를 호전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 교수는 “선택적 함구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며 “아이가 가정 등 편안한 환경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한 다음 교실에서 친구들과 지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선택적 함구증은 단기간 내 치료효과가 기대하기 힘들어 부모의 격려와 인내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선택적 함구증은 흔한 질환은 아니지만 아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고, 막상 치료를 시작해도 드라마틱하게 치료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치료를 조기에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며 “적어도 20회 이상 꾸준히 치료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말하지 않는다고 야단치거나 압박하면 아이 상태만 악화된다”며 “극도의 불안감으로 아이가 말을 못한다면 약물치료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김치중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