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 명장 3인의 고전명화 릴레이 상영

2017-08-1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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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황금기 이끈 미조구치·오주·테시가하라

▶ 대표작 6편 샌타모니카 에어로극장서 24일부터

일본 명장 3인의 고전명화 릴레이 상영

야수지로 오주의 영화 ‘도쿄 스토리’의 한 장면.

아메리칸 시네마테크는 오는 24일부터 사흘간 ‘일본 아트하우스 클래식’이라는 제하에 3명의 일본 명장의 작품 6편을 에어로극장(1328 Montana Ave. Santa Monica, ☏(310)260-1528)에서 2편 동시상영 방식으로 상영한다. 3인의 감독은 1950년대 활약한 켄지 미조구치와 야수지로 오주 그리고 1960년대 일본의 뉴 웨이브 감독 히로시 테시가하라.

일본영화의 역사는 무성영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황금기는 전후인 1950년대였다. 그리고 일본영화가 미국에 알려진 것도 이 때다. 1948년 법원에 의해 스튜디오의 극장체인 소유가 금지되면서 전국에 독립극장들이 생기고 이와 함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 프랑스의 누벨 바그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일본영화들이 수입되었다.

미조구치는 작품의 세밀한 시대 묘사가 뛰어나고 카메라 동작이 유려한 감독으로 작중 인물들에 연민의 정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학대와 핍박을 받는 여인들을 깊은 동정으로 다룬 사람이다. 오주는 카메라가 부동의 자세로 찍은 정확한 화면구성과 생략적인 서술로 유명한 장인으로 서민층의 일상이 지닌 비감과 유머와 실수 그리고 가족의 갈등과 해체를 즐겨 다룬 감독이다. 테시가하라는 기존 일본영화의 틀을 깨고 스튜디오 밖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한 감독 중의 한 사람으로 과작이나 개인과 사회에 관한 내용을 은유적으로 다루었다.


■24일(오후 7시30분)

▲우게추 (Ugetsu·1953)

신비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귀신 이야기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 16세기 초 내전으로 혼란한 때 깡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도자기를 굽는 겐주로(마사유키 모리)와 그의 이웃인 토베이(사카에 오자와)가 돈과 명예를 구하려고 각기 아내(키누요 다나카와 미추코 미토)를 남겨놓고 큰 마을로 나갔다가 서로 헤어져 겪는 이야기. 겐주로는 귀부인 귀신을 만나 애정을 나누고 토베이는 사무라이가 되나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다. 이 바람에 시골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이 두 남자의 아내들. 흑백촬영과 음악이 훌륭하다.

▲오하루의 인생 (The Life of Oharu·1952)

17세기 궁중 시녀로 사무라이의 딸인 오하루(키누요 다나카)가 자기보다 지체가 낮은 남자를 사랑하다가 궁에서 쫓겨난다. 여기서부터 부모와 함께 유배 길에 나선 오하루의 고된 일생이 시작되는데 오하루는 남의 첩이 됐다가 급기야 창녀로 전락한다. 여자가 겪는 감정의 피폐화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도시로 미후네 공연. 흑백. 둘 다 미조구치 작품.

■25일(오후 7시30분)

▲모래집 속의 여인 (Woman in the Dunes·1964)


극도로 제한된 한계상황 속에 처해진 인간의 심리상태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의 일상과 테두리 그리고 신비를 탐구한 실존적 심리드라마로 서스펜스 스릴러의 분위기마저 갖추었다. 칸영화제 심시위원 특별상 수상작.

30대의 아마추어 곤충채집자 줌페이(에이지 오카다)가 해변 마을로 채집을 갔다가 막차를 놓치면서 동네 사람들에 의해 여자(교코 기시다)가 혼자 사는 모래 언덕 속의 집으로 안내된다. 여자는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내면서 산다. 이튿날 줌페이가 깨어나니 외부세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밧줄사다리 없어졌다. 이 때부터 줌페이는 모래집과 여인의 포로가 돼 여인과 함께 모래를 열심히 퍼내면서 탈출을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그리고 모래감옥에 갇힌 두 남녀는 짐승의 고독과 욕정에 못 이겨 폭력적인 섹스에 몸을 던지다. 모래 퍼내기와 섹스를 반복하던 줌페이는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나 “아직 달아날 필요가 없다”면서 다시 모래집으로 내려간다. 토루 타케미추의 모래의 호흡과 미끄러져 내리는 동작을 불길하게 묘사한 음악과 흑백촬영이 눈부시다.

▲남의 얼굴 (The Face of Another·1966)

자아와 신원에 관한 음산하고 강렬한 명상으로 주인공 오쿠야마(타추야 나카다이)는 사고로 얼굴이 끔찍하게 이글어진 성공한 사업가. 그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남의 얼굴에서 본 딴 산 모습과 똑같은 마스크를 자기 얼굴에 씌운다. 그런데 이 마스크가 오쿠야마의 성격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흑백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둘 다 테시가하라 작품.

■26일(오후 7시30분)

▲도쿄 스토리 (Tokyo Story·1953)


‘와룡선생 상경기’의 쓸쓸한 편과도 같은 영화로 야수지로 오주의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를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절실히 드러난 감동적인 작품이다. 시골서 도쿄로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을 보기 위해 상경한 노부부(치슈 류와 치에코 히가시야마)가 자신들을 짐스럽게 여기는 자식들에게 실망하고 귀향하는 간단한 얘기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감정의 타래를 풀어헤친 감정 충만한 영화로 오주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실망스런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치슈 류처럼 오주 영화의 단골인 세추코 하라 공연. 흑백.

▲가을 오후 (An Autumn Afternoon·1962)

오주가 즐겨 다루는 결혼과 가족의 연결 고리 그리고 세대 차이와 고독을 그린 영화. 오주의 마지막 영화로 컬러다. 슈헤이 히라야마(치슈 류)는 장성한 아들과 혼기가 꽉 찬 딸 노리코와 함께 사는 홀아비 회사원. 그는 죽은 어머니 대신 가사를 전담하는 노리코를 잃을 것이 두려워 딸의 결혼을 은근히 모른 척 하다가 마침내 결혼시키기로 결정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로 유머와 가슴 아픈 페이소스를 고루 지녔는데 모든 것이 감지하기 힘들만큼 고요하고 민감한 작품이다. 노리코를 시집보내고 난 후 귀가해 빈 방의 어둠을 배경으로 혼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찍은 라스트 신이 비감토록 아름답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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