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27년 전 딱 이때쯤, 이 몸이 미국 동부의 한 도시에 도착한지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된 때였다. 난 그때 친구 가족의 여름휴가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결혼 직후 나만 먼저 미국 들어와 그의 집에 잠시 얹혀살고 있었는데, 그런 처지의 내가 불쌍했는지 친구는 나를 캐나다 여행길에 기꺼이 끼어줬다.
그때 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의 하나로 꼽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했다. 미 동부의 푸른 산천을 누볐고, 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며, 또 여행 중 여기저기 들려 미국식 바비큐를 먹는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축복의 여정에서도 어떤 지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리운 아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우리는 미국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5년이 지난 즈음 없는 살림에 대단한 희생을 감수해가며 다섯 살과 세 살 난 아이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겐 이미 한 번 가 본 나이아가라였다. 아무리 좋은 덴들 다시 가면 첫 감흥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게 상식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그때 그 여행은 첫 번째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왜였을까? 문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였다.
같은 경험도 이처럼 그것의 ‘맥락’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그게 인생이다. 특히 여행에는 이 맥락이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다들 해봐서 알 것이다. 여행의 질적인 만족은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그렇게 좋았던 사이인데도 동반 여행 후 둘 사이가 갈라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서먹했던 사이인데도 여행 후 급격히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다. 여행이라는 상황은 사람의 본질을 쉽게 드러내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아마도 그 중에 제일일 게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전혀 몰랐던 누군가와, 그것도 나와 다른 성별의 한 사람을 만나 몸과 마음을 섞으며 산다는 이게 어디 보통일인가?
그래서 결혼은 어찌 보면 실로 대단한 새로운 인생 문맥 찾기 작업인 것 같다. A라는 여인이 내 인생 문맥에 찾아들면 나도 A 인생으로 바뀌기 쉽고, B라는 여인과 함께하면 내 인생도 자연스럽게 B의 길을 가게 된다. 그래서도 결혼은 인륜대사라는 게 참 맞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누구와 밥을 먹느냐와 같은 간단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이번 여름휴가는 누구와 떠나느냐, 누구를 직장상사로 모시고 일하느냐, 그리고 누구와 내 남은 인생동반자로 살아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실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이런 주제를 다루다 보면 당연히 교회라는 데가 떠오른다. 교회도 문맥성이 아주 중요한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는 누군가, 그는 성경을 어떻게 설교하고 가르치는가, 그의 신학적 성찰과 신앙적 비전은 무엇인가, 적어도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이런 맥락들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목사 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주 하는 내 설교의 청중들은 정작 무얼 듣고 싶어 할까, 그들은 그 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의 집 생활, 그들의 직장생활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고 있을까, 목사들 역시 이러한 문맥적 사고를 하면서 그들을 대한다.
누구와 여행을 떠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듯, 교회생활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며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나 역시 나와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 누군가에게 어느 한 문맥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의 원하는 ‘내 문맥’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도 나를 통해 ‘그의 문맥’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갈수록 느끼는 바이다. 교회는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목사여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교회는 인생의 새로운 삶의 문맥이다. 그리스도를 만나 내 삶의 문맥이 통째로 변해버렸다. 그 대단한 변화를 나와 동일하게 경험한 믿음의 동반자들, 그들이 곧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이다. 내게 새롭게 찾아온 인생의 문맥들, 그들과 함께 신비한 새 삶의 여정을 떠날 것을 권한다. 더불어, 나도 그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그의 신앙의 문맥이 되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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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