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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역사 신학적 조명(5)

2017-07-27 (목) 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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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초대교회를 정화시키는 성령

사도행전 5장 1-6절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는 바나바의 이야기와 대조를 이룬다. 아나니아와 바나바는 똑같은 사회적 계층에 속하였다. 땅을 소유하였고, 팔아서 재분배를 위해 사용할 정도로 부유한 계층이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바나바가 모든 재산을 바칠 때에 질투를 느꼈고, 기쁜 마음으로 헌신할 마음이 없었다고, 희생하는 마음이 없이 희생제물을 드리는 기만성이 문제였다고 Albert C. Winn은 해석하였다.

구약 여호수아 7:1이하의 아간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하다. 소유를 판 값의 일부를 감춘 것은 아간이 부당하게 거짓으로 일부를 감춘 것과 유사하다. 결국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내가 관리하고 있다는 의식이 부족한 탓에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거짓말함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속인 것이다.


여기서 성령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게 이해한다고 4세기의 가파도기아학파는 분석하고 있다. 곧 성령을 속인 것은 성부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5장의 핵심말씀은 5: 3-4: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2절에 땅값 얼마를 "감추매"에 감추었다는 말의 희랍어 원어는 "evosphisato"이다. 그 뜻은 "감추다"를 넘어서 "훔치다, 도둑질하다"는 뜻이다. "그 아내도 알더라"는 희랍어로 "suneiduies kai tes guvaikos"로서 "누구와 지식을 공유하다" 곧 함께 이 일을 모의하다는 뜻이다. 부부가 함께 공모했다는 것이다. Wesley Study Bible은 소득의 일부만 바침으로 믿음의 공동체에 방해를 일으킬 의도가 있었음을 해석한다.

웨슬리는 항상 동기와 의도의 순수성(singleness of motivation intention)을 중요시 여겼다. 하나님의 영광을 동기로 삼아야 하는데, 자신의 영광을 삼으려 할 때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속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다윗을 하나님이 좋아하신 것은 그 중심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너무 심하게 대하지 않았는가 고 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속인 것, 곧 성령을 속인 것에 있다. 이 기사가 보여주는 가장 강한 메세지는 성령이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 현존하고 임재하며, 교회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곱 초대 사이를 다니면서 운행하시는 성령을 요한계시록이 언급하는데, 바로 그런 실제적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성령은 교회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속에도 내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도는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을 고전3: 16-17절은 말하고 있다. 성령은 교회와 성도 속에 내주하셔서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화의 주님(Sanctifier)이시다.

The Anchor Bible 주석은 초대교회에는 성령을 거슬리는 죄악을 가장 위험시하였는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과 이 부부가 땅값을 속인 것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성령을 속이고, 성령을 거슬린 최대의 죄악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였던 베드로가 성령을 거슬리고 속인 죄를 곧 분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William Barclay는 이 이야기는 사도들이 붙들고 있었던 인간 마음의 대망과 특별한 존경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높은 도덕수준이 참 신앙의 모습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Barclay는 성경은 좋은 이야기뿐 아니라 나쁜 이야기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크롬웰이 사마귀가 있었는데 화가가 사마귀를 빼고 그렸을 때 크롬웰은 다시 사마귀를 그려 넣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약점과 실수들을 통하여 성경은 더욱 하나님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높은 도덕 수준을 보이기 위해 저질스러운 비도덕적 행동도 대조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계속>

<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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