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세대주택 ‘아파트’의 시작

2017-06-29 (목) 미셸 원 BEE 부동산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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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원 칼럼

LA 곳곳에서 아파트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LA는 중간소득에 비해 주택가격이 높아 미국 전체에서 주택소유율이 두 번째로 낮은 도시이고, 50%가 넘는 주민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가 늘어나도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파트는 여전히 최고의 부동산 투자가 된다.

그러면 아파트 건물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기원 전 고대 로마의 ‘인슐라’(insula)가 기원이다. 쉽게 예를 든다면 아기 예수가 작은 시골마을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 로마 시내에는 이미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 있었던 것이다.


이 인슐라는 나무와 진흙벽돌로 지어졌지만 가끔 10층이 넘는 건물도 있었는데 층별로 임대료가 다르며, 보통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낮아진다.

또 위·아래층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허술했다고 하니 층간소음은 아파트의 역사와 함께하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화재 문제 때문에 공동 화덕을 두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도 하였고, 1층에는 상가가 있었다고 하니 주상복합단지의 시작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없어 배설물을 모아 하수도에 버려야 했고, 간혹 창문밖으로 쏟기도 해 애꿎은 행인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문학가와 웅변가로 유명한 키케로도 이 때 아파트 주인이었다고 한다. 그 후 10세기 경 이집트 카이로에는 7층 높이의 아파트가 많이 있었으며 도시 주민의 다수가 그런 건물에 살았으며, 한 동에 2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11세기 기록에는 14층 높이의 아파트도 있었다. 게다가 옥상에는 물레방아가 있는 정원이 있었다고 하니 이 시대의 아파트는 더 이상 도시 빈민들만의 거주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근대적 아파트는 17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돼 이후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지어졌고, 19세기에는 아파트 건설이 부자들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면서 대규모 산업으로 자리잡아 지금의 파리시가지가 형성됐다.

이 시대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도시에도 아파트들이 있었고 건물의 고도제한도 있었다. 그러나 훗날 고도제한이 풀리며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아파트 건물들은 높아졌고, 인구과밀로 인한 교통난이 심각했다니 사람 사는 모습은 다양하기도 하지만 어디서나 비슷하기도 한 것 같다.


그 후 인구 증가와 함께 부동산 투자에 따른 이윤 창출도 늘어났고, 유럽 대도시들의 아파트는 임대료를 기준으로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등급에 따라 중산층을 위한 것이나 신흥부자들을 위한 고급형도 있어 이미 이 때 화려하고 웅장한 아파트가 있었다니 지금의 맨션아파트의 시작이다.

당시 유럽의 아파트는 로마의 인슐라처럼 계층별로 각각의 층을 사용했고, 그에 따라 임대료도 달랐다. 1층은 상점이나 관리인이 상주했고, 2층은 가장 비싸기 때문에 주로 아파트 소유주가 살거나 아니면 부유한 사람에게 임대되었고, 대개 2층 전체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3층부터 임대료가 싸지기 시작해 중간 수준의 소득자들이 살았고 지붕 아래 공간인 다락방의 경우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도시 상공인, 독거노인들이 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한편 1920년대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코르뷔지에가 지금과 같은 현대적으로 구상한 아파트 단지 계획안을 내놓았다. 원래 수도 파리의 빈민 구제안으로 기획된 그의 아이디어는 주거목적으로만 이루어진 보통의 아파트와 달리 한 마을을 거대한 빌딩 안에 수직도시의 형태로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2층에 유치원, 1층에는 수퍼마켓을 들이고, 옥상에는 정원 및 수영장 등 건물 곳곳에 생활시설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해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착된 공동주거를 싫어하는 유럽인의 특성과 이미 기존 건축물로 꽉 차있는 도시의 문제로 도심안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유럽이나 북미의 대도시에는 실제로 한국 같은 고층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다.

<문의 (818)497-8949>

<미셸 원 BEE 부동산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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