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49)‘Moonshine’

2017-03-24 (금) 조태환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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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hine 이란 단어를 ‘月光’ 이라고 번역을 해놓으면 운치가 있게 들리기는 하지만 사실은 틀린 번역이다. 미국의 속어로는 ‘저질의 밀주’ 를 지칭하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초창기부터 양조와 음주는 정치적,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과음은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음날 공장에서 기계사용 중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라고도 생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음주는 도박, 조직범죄, 정치적 부패를 조장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개혁주의자들과 공장기업주들은 1830년대 부터 절주운동을 시작했는데 1851년에 Maine 주가 처음으로 모범적인 금주법을 제정하였다. 그후 금주운동이 차츰 활발해져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미국 주들의 절반정도가 금주법을 제정하였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금주운동은 더욱 큰 호응을 받았다. 금주는 ‘곡식을 절약하고 맥주를 즐겨 마시는 독일인들에게 고통을 주게될 것이며 공장노동자들과 군인들의 정신을 맑게해 줄 것이다’ 라고들 얘기하였다.

전쟁중 국회는 1918년에 금주령을 입법하였고 1919년 1월에 미국 전주의 4분의 3이 동의하자 미국헌법 제18개정으로 채택되어 1920년 1월부터 주류의 양조, 배달, 판매가 금지 되었다. 두 개의 주가 동의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미 전국에 금주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한가지 웃지못할 얘기로는 alcohol 사용이 ‘약용’으로는 허용되었던 모양으로 금주령 발효이후 의사들과 약사들의 ‘주류면허’ 신청이 갑자기 늘었다는 것이다.


금주령이 시행되던 동안에는 술은 만들지도, 운반하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들의 습관이 법으로 하룻밤새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서 금주령은 점심때 샌드위치와 함께 맥주 한병을 마시는 노동자들과 저녁에 반주로 칵테일 한 잔을 하는 사람까지 미국의 많은 사람들을 하룻밤 사이에 ‘범법자’로 만들었다.

금주령이 지키기 어려운 것을 알게된 미국사람들은 음주를 비밀스럽게 하거나 아니면 이 법을 아예 무시하게 되었다. 칵테일 한잔을 마신 사람을 모두 다 잡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전국에 1,520명의 감찰관들로서는 단속기관에서도 금주령을 법대로 집행할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범법’을 공공연 하게 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일반시민들의 준법정신에 영향을 주었다. ‘필요한’ 물품을 합법적으로 제조하거나 팔 수 없게되자 주류의 밀제조나 밀거래는 자연히 범죄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마피아 등 조직범죄단들의 독점품목이 되었다. 도덕군자들의 선의가 조직범죄단의 범죄로 끝난 격이 되었다.

백주에 도시 가운데서 합법적으로 양조할 수 없게되자 범죄형 인간들은 자연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달빛’ 아래에서 밀주를 만들게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저질의 술이 만들어져서 양조장의 이름조차 모르는채 은밀히 거래되던 이런 저질의 밀주들을 Moonshine 이라고 불렀고 이런 밀주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Moonshiner , 밀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Bootlegger 라고 불렀다.

Bootlegger 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승마용 가죽장화같은 boot 에 술병을 넣어서 배달하던 일에서 시작된 속어이다. Moonshine 은 암호를 대 주어야만 문을 열어주던 비밀 바에서 머리를 짧게 깎아 올리고 그때로서는 상상도 못할 short panty 를 입은 Hip Flapper (일본식 발음의 우리말 ‘후랍빠’ 의 어원) 들이 손님들을 접대 했는데 bar 에 들어가서도 ‘한잔 주시오’ 식으로 말하면 안 되고 ‘은밀히 주문’ 했야만 (speakeasy) 했던 까닭에 이런 불법밀주를 Speak-Easy 또는 Blind Pig 나 Blind Tiger 라고 불렀다.

켄터키 주에는 불법밀주 단속이 다른 주들 보다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던지 Moonshiner 들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였던 모양으로 미국 특유의 whisky 인 Bourbon 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드디어 Bourbon 은 주법으로 특별히 규제하고 보호하는 켄터키 주 특산주가 되었다.

‘밀주’ 라고 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범법’을 생각하게 되고 나쁜 일로만 쳐버리기 쉬운데 미국 역사 속에서의 ‘밀주’ 는 반드시 나쁜 뜻을 함축하는 단어가 아니며 어느 시기에는 ‘독립, 애국심’ 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쓰여졌다.


미국의 독립선언문 밑의 맨 가운데 자리에 제일 큰 글자로 서명한 인물이 제헌의회 의장이었던 John Hancock 인데 그 사람이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Boston 에서 가장 유명한 술 밀수꾼이었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차에 부과하는 관세에 반대하여 인디언으로 분장하고 보스턴 항구에 차를 내던졌던 보스턴 시민들은 술에 부과한 세금에도 반기를 들어서 밀주를 하고 술을 밀수입하는 것을 애국적인 행동으로 생각했다고 하며 그로 인해서 생긴 영국군과 보스턴 시민들의 유혈충돌이 독립전쟁 발상의 한 원인이 되었던 까닭이.다

밀주 때문에 생긴 두 번째 유혈충돌은 미국 독립후에 일어났는데 독립전쟁 때문에 생긴 국채 수천 만 달러를 갚을 길이 막연해지자 Alexander Hamilton 초대 재무장관은 술에 과세해서 국채를 갚도록 Washington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과세를 시작하자 ‘세금 안 내려고 독립을 했는데 주세가 무슨 말씸이여!’ 라고 반발하면서 사람들이 밀주를 공공연히 해 마셨다고 하며 피츠버그에서는 시민 폭동이 일어나 Washington 대통령은 1만3,0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해서 겨우 진압했다.

세 번째 밀주 파동은 금주령이 시행된 후 일어났는데 결과적으로 Al Capone 같은 조직범죄단들을 양산시키고 후일 FBI 와 ATF (Bureau of Alcohol Tobacco and Firearms) 로 성장한 Bureau of Investigation (초대 형사는 J. Edgar Hoover 로서 후일 FBI Director 가 됨) 을 설립함으로서 겨우 막아보다가 결국 13년 후인 1933년에 미국헌법 제21개정으로 금주령을 페지시켰다.

금주령이 내려저 있던 기간 동안에는 미동부의 메인 주에서 플로리다 주에 이르기 까지 동부해안 전체가 영해 3마일 바깥에서 밀수입하는 주류의 도매시장이 되어있다고 하며 일부 대담한 밀수꾼들은 1차 대전때 쓰던 잠수함에 술을 싣고 해안에 와서 술을 담은 어뢰를 쏴서 해안에 배달까지 했다.

롱아일랜드의 Freeport 의 조선장 에서는 Coast Guard 와 밀수꾼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빠른 쾌속정들을 만드느라 바빴다고 한다. 술을 차로 배달하다가 발각되었을 경우에 추격하는 경찰차를 따돌리기 위해서 후일 레이싱 카로 둔갑한 초고속 차량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초기 auto racing 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이 bootlegging 전력이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풍설이 있었다.

밀수주들을 주로 Caribbean Islands 에서 밀수를 해왔는데 Bahamas 의 Nassau 에서는 금주령 전에는 일 년에 1만2,000 갤런을 수입했었으나 금주령기간에는 년 200만 갤런으로 밀수량이 늘었다. 금주령 기간 동안에 판 술들은 98%가 불순물들이 섞인 저질 술이었는데 McCoy 라는 밀수꾼 한사람만이 진짜 술을 팔았던 까닭에 지금도 무슨 물건에 대해서 ‘Real McCoy’ 라고 하면 ‘진짜 명품이다’ 라는 의미가 된다. 한때 한국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Johnnie Walker Whisky 한병에 저질 주류를 혼합 해서 세 병, 네 병을 만들어서 팔았던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런 식의 가짜 술들을 Monkey Rum 이라고 부른다.

<조태환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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