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극
2017-03-23 (목) 09:26:43
에스킬러스가 쓴 ‘오레스테이아’는 현존하는 서양의 가장 오래된 비극이다. 3부작으로 된 이 비극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로 떠나기 전 바람 때문에 그리스 함대의 발이 묶이자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딸 자식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친다. 이에 분노한 아내 클리템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그리스에서 돌아오자 정부 에기스투스와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진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자니 어머니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살려 두자니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에는 복수와 정의의 차이가 없었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이고 재판에 부쳐지며 배심원 판결은 가부 동수지만 캐스팅 보트를 쥔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무죄에 한 표를 던지면서 오레스테스는 풀려난다. 대신 앞으로는 사인이 복수를 하는 것이 금지되고 죄에 대한 응징은 공권력이 하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진다.
1974년 8월 9일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대통령 직을 사임한 뒤 한 달 후인 9월 8일 그 후임자인 제럴드 포드는 닉슨에 대한 무조건적이고도 완전한 사면을 선포한다. 그의 이런 조치는 그가 취임 직후 “우리의 오랜 악몽은 끝났다. 우리 헌법은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 위대한 공화국은 법치 국가며 인치 국가가 아니다. 국민이 주권자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이보다 높은 권력도 있다. 그것은 의로움뿐만 아니라 사랑을, 정의뿐만 아니라 자비를 요구한다. 정치의 황금률을 회복하고 형제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서 의심과 증오를 씻어내게 하자”고 연설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기는 했으나 당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일부는 그가 사면을 대가로 대통령 직을 물려받았다고 비난했다. 1976년 대선에서 그가 지미 카터에게 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닉슨 사면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의 결정이 옳았다고 보고 있다. 2001년 존 F 케네디 재단은 포드에게 닉슨 사면과 관련해 ‘용기의 단면’상을 줬다. 당시 사면에 반대했던 에드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도 역사가 그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만약 포드가 그 때 정의의 이름으로 닉슨을 기소해 감옥에 보냈더라면 워터게이트로 인해 촉발된 미국 내 갈등은 더 미국을 갈라놓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더 오랜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가 21일 오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검찰은 구속 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박근혜로서는 청와대를 나와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셈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하다며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20여년 간 좌우의 극심한 대립으로 멍들어 왔다. 좌파의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한 극심한 증오도 그 원인의 하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이들이 노무현의 살인자란 주장이다.
탄핵은 정치인에게 가장 수치스런 징벌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그렇게 쫓겨난 박근혜를 다시 감옥까지 보내 끝까지 망신을 주는 것이 과연 한국 사회의 통합과 치유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온 국민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