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상학자와 경제학자

2017-01-11 (수) 09: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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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의 엘 니뇨” “대대적 기상 이변 예고된다” “남가주 올 겨울 폭우 예상”모두 2015년 가을 신문 주요 기사 제목들이다.

그 해 11월 18일 태평양 중부 지역 수온이 평균보다 섭씨 3.1도 높아지면서 1997년의 2.8도를 넘어서자 “올 겨울 사상 최대의 엘 니뇨가 발생할 것”이며 “그 결과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남가주는 오랜만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됐었다.

엘 니뇨란 인도네시아와 호주 인근 태평양 해류의 수온이 오르면서 이것이 미 대륙 쪽으로 이동할 때 생기는 현상으로 그때까지 최대 규모였던 1997년의 경우 아닌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가뭄과 홍수 등 기상 이변으로 2만 여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그러나 2015~2016년 엘 니뇨로 인한 기상 이변과 피해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됐던 남가주의 경우는 오히려 예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가 내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97년 때 엘 니뇨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번 엘 니뇨는 그 때보다 규모가 크니까 더 큰 재난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기상 현상을 좌우하는 것은 엘 니뇨만은 아니다. 수만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이것이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남가주에 예상된 비가 내리지 않자 기상학자들은 비가 올 예정이었으나 때마침 남가주 일대에 발생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수증기를 품은 기류의 흐름이 막혀 오지 않았다는 변명 비슷한 설명을 내놓았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많은 비가 올 수 있으나 고기압이 발달할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하는 것이 옳았다.

엘 니뇨로 한번 실수한 기상학자들은 2016년 가을에는 라 니냐 현상이 관측됐다며 올해 남가주는 예년보다 건조한 날씨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라 니냐는 엘 니뇨 다음 해 주로 관측되는데 태평양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 엘 니뇨 때와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가주에 많은 비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던 엘 니뇨는 허탕을 치고 다시 건조한 라 니냐가 온다니 많은 사람들이 허탈한 마음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웬 걸. 올해 가주는 지난 수 년 동안 보지 못한 비 풍년을 경험하고 있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로 불리는 수증기를 잔뜩 품은 ‘대기의 강’이 가주를 연타하면서 가주 물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에라의 적설량은 10일 현재 평년의 135% 수준이고 11년만에 처음 수위 조절을 위해 새크라멘토 강의 수문이 열렸다.

때 아닌 홍수로 이웃 네바다에서는 비상 사태가 선포됐고 요세미티 밸리는 홍수 위험으로 9일 폐쇄됐다. 올 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힘찬 폭포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1일부터 시작된 이번 우기에 지금까지 LA에 내린 비는 7.21인치로 지난 30년 평균인 4.95인치를 훨씬 상회한다. 이쯤 되면 기상 전문가 중 한 사람 정도는 그간 잘못된 예측에 대해 뭔가 한 마디가 있을 법한데도 아무 말도 없다.

“신은 기상학자를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경제학자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1929와 2000년, 2007년의 주가 폭락과 불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요즘 기상학자들 모습을 보면 둘 중 누가 누구보다 낫다고 말하기가 몹시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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